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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의 기적/ 송정림

2016.08.28 17:21

오세윤 조회 수:132

밥 한 그릇의 기적 / 송정림



 

 

 

 

 

    밥 한 그릇의 기적 / 송정림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여기저기 떠돌다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내마저 집을 나가고 빈집에는
    올망졸망한 아이 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지쳐 쓰러질 듯 누워있는 아버지 앞에 밥상 하나가 놓였습니다.
    거기, 밥 한 그릇과 김치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버지 드시라고 지어온 밥이었습니다.
    그 밥 한술을 뜨고 나니 울음이 터졌습니다.
    오래 참았던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밥을 먹고 나서 아버지는 기운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생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조팝나무를 보다가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조팝나무의 이파리들이 어머니가 지어주셨던
    하얀 쌀밥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말 한 마디 할 기운이 없는 상황에서
    아들에게 밥을 지어줬습니다.
    그리고 "밥 먹어라, 밥..."이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지어주셨던
    그 하얀 쌀밥이 조팝나무에 꽃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보도를 접했습니다.
    어느 파출소로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들고
    한 시간째 동네를 서성인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는 파출소에 와서도
    "딸이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당신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던
    할머니는 보따리만 껴안고 그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할머니 말처럼 딸은 예쁜 손녀를 낳고 입원해 있었습니다.
    딸을 보자 그제야 할머니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식어버린 밥과 미역국,
    나물 반찬이 있었습니다.
    "어서 무라."는 어머니의 그 말에
    딸은 그만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습니다.
    힘내라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더 깊고 따뜻한 언어...,
    밥이 아닐까요?


    밥 한 그릇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또 한 번 느끼게 되는 날이 있었습니다.
    제자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비 오는 날 어머니가 걸어가는데
    비를 흠뻑 맞으며 걸어가는 한 마리 개를 봤습니다.
    걸음걸이가 힘이 없어 보여서 유심히 보는데,
    자세히 보니 앞에 어떤 중년 남자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맨발로 걸어가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걱정이 돼서 쫓아가 보니
    다리 밑에 박스들을 펴놓고 사는 노숙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짓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힘없이 걸어가던 개와 비틀거리는
    맨발로 빗속을 걸어가던
    중년 남자가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다리 밑으로 가보니 노숙인 남자는
    쪼그려누워 잠들어 있고,
    개는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힘없이 누워있었습니다.
    사료를 주니 얼마나 굶었는지
    개가 달려들어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잠든 노숙인 아저씨 앞에도
    한 그릇의 밥과 찬을 놓고 나왔습니다.
    다음 날에도 또 그 개와 누숙인 남자가 걱정이 됐습니다.
    마침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당신 이거 좀 들고 따라와요."
    그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일 저녁 개의 사료와 노숙인 아저씨의 식사를 가져갔습니다.
    언제부턴가 개는
    친구 부모님이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친구 부모님은 그 일을 거를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빼고 기다리는 개가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료와 설렁탕 한 그릇을 들고 갔는데,
    그곳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디 갔지?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멀리서
    뛰어오는 노숙인 아저씨와 개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처음 본 날 빗속을 비틀 거리며 걷던
    그 개와 남자가 맞나 싶었습니다.
    개는 귀를 펄럭이며 날 듯이 뛰어왔고
    그 남자 역시 기운이 펄펄 나는 듯 달려왔습니다.
    그 믿을 수 없는 모습에 어머니 눈 밑이 젖어들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노숙인 남자의 말이었습니다.
    이제 폐지를 모아서
    하루에 2,000원씩 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사업 실패로 노숙자가 된 남자는 살아갈 의욕도, 힘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가져다 놓은 밥 한 그릇을 먹었고
    그 힘으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먹는 단 한 그릇, 그 밥의 힘은 엄청났습니다.
    몸에 힘이 생기니 마음에도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희망과 의욕도 품을 수 있었습니다.
    6개월이 흘렀습니다.
    남자는 폐지를 모아 팔던 고물상에 취직을 했습니다.
    남자는,
    그리고 그 남자의 개는 더 이상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배고픈이에게 누군가 내민 따뜻한 밥 한 그릇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일으켰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누구나 기억하는 대명사입니다.
    밥을 먹고 다닌다는 것은 잘 지낸다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안부입니다.
    밥 한 그릇을 떠놓고 식탁에 앉습니다.
    따뜻한 그릇을 손으로 감싸고
    눈을 감아 봅니다.
    밥 한 그릇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봅니다.
    쌀 한 톨이 여물 때까지
    거기 스며든 달빛과 비와 눈과 이슬의 방문이,
    메뚜기와 잠자리의 방문이,
    농부의 정성이 참 고맙습니다.
    왜 밥을 '짓는다'고 하는지 알겠습니다.
    밥은 마음을 위로하기 때문입니다.밥은 사랑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월간 [에세이]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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