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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기념관 동상 <사진 구글이미지>



 

티오의 18번 신라의 달밤

티오를 만난 것은 한국 참전용사 월례모임이었다.
자그마한 몸집에 악의없는 미소로 얘기가 끝이 없다.
마침 옆에 있는 힌국전 참전용사 회장이 티오가 한국 노래를 잘한다고 귀뜸해준다.
아리랑 정도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한국 지명을 모르는 곳이 없고
18세 때 포로가 돼서 3년 동안 끌려 다녔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전쟁 때 포로라니 그 당시 인민군이 자기네들도 먹을 것이 없는데
포로들을 잘 먹였을리가 없고 그러니 한참 자랄 때
먹지를 못해서 저렇게 작구나 싶어 별안간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 무슨 노래를 할 줄 아냐고 했더니
"신라의 달밤"이라고 하면서 가사를 줄줄이 외워댄다.
아니 40여년 전에 배운 한국 노래를
어떻게 아직도 기억 하느냐고 물었더니 3년 동안 매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얘기가 기가 막히다.
'신라의 달밤'을 불러야 인민군들이 밥을 줬다고 한다.
아마 장난겸 했겠지만 밥을 얻어 먹으려고 매일밤 '신라의 달밤'을 불렀다면서 픽 웃는다.
나도 따라 웃어야 할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노래를 부르라고 장난삼아 총뿌리로 쿡쿡 찌르는 인민군 병사의 얼굴이나
내 얼굴 모양이 비슷할텐데 나를 미워하지도 않고 계속 웃어만 댄다.

이날 월례모임에는 60여 명이 모였는데 대부분 60대 후반 70의 나이이고
옷에는 신경을 안 쓰는 사람들 같았다.
이들은 303 고지가 어디인지 몰라도
이곳에서 하룻밤 사이에 사망한 40명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여러 사람이 나눠서 이름, 계급, 생년월일 순으로 부르는데
이름을 부르는 깨끗한 모습의 한 여자분은 한국전 미망인이라고 한다.
생년월일을 들어보니까 대개 18세에서 20세이다. 이름을 부르면서 연신 눈물을 닦는다.
아까 차림이 남루하다고 했는데 18세 때 전쟁에 갔다 왔으니까
교육이 제대로 된 이가 없어 전문직을 못 가졌구나 싶어
이들 역시 한국전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한국전을 우리는 잊어가고 있는데
당사자인 우리들보다 더 심각하게
한국 얘기를 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말을 점잖게 해서 그렇지 시종 내 눈시울도 뜨거운 시간이었다.

그날의 안건 중에는 어스틴에 세워질 한국전 기념비 모금액 발표가 있었는데
10여만 불이나 모였다고 해서 나까지 포함해서 크게 박수를 쳤다.
그런데 이게 목표액의 40% 밖에 안된다고 해서 모두 또 웃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웃음으로 회의가 진행된다.
그러면서도 각 회원들에게 모금액을 할당하는 치밀성이 있다.
이날은 한국전쟁 45주년 기념일이었다.
각자 올 적마다 5불씩 회비를 내고
연상 참석하는 사람들이 등록하면서 구어 온 케이크와 피자 등을 내놓는다.

얼마 전 신문에서 우연히 한국전쟁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얘기와
이곳 총영사가 참석했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우리보다 더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준다.

 

글/ 곽웅길
James Woongkil Kw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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