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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나

2017.10.10 18:59

오세윤 조회 수:168

 

성숙의 불씨
 
   551호 2017.10.10
‘성숙의 불씨’는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에서
주 1회(화)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배려와 나

  지난 9월 30일 저녁에는 여의도에서 제15회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8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와서 축제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교통이 마비되고 각종 불상사가 난무했을 뿐 아니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주최 측은 물론 경찰과 소방관 등 관계자들이 모두 동원되었어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축제'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공중도덕과 남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시급한 시점이다. 다시 한번 실종된 시민의식과 군중심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어 사전에는 '배려(配慮)'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배려의 중국어 번역인 '관화이(關懷)'나 '자오구(照顧)'는 '보살피다, 돌보다'는 뜻이 강하지만 배려에 내포된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뉘앙스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 '바이두(百度)'에 배려를 입력하면 '남을 대신해 생각한다는 뜻이 담긴 일본어'라고 나온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로부터 배려는 중국인과는 상관이 없으며, 일본인에게만 고유한 품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성급한 자유주의와 미숙한 개인주의에 표류하는 현대인 모두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보편적 덕목이기도 한 것이다.

  배려를 중요시한다고 해서 반드시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다면 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남'에 의해서 규정되고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푸코(M. Foucault)는 소크라테스적 자아의 인식이 고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도덕의 원리로 작동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은 단순히 '도덕적인' 명제가 아니며 광활한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원리였음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자아인식을 자신을 '배려하는 것', 혹은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이해한다. 영혼을 돌보는 행위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해 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타자와의 관계를 함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식은 단순히 사회적 맥락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의 존재와 연관된 객관적인 현상과 사물의 본질에 관한 인식이기도 하다. 자아인식이 단순히 '남'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 및 자연환경 전체에 대한 배려를 함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푸코는 소크라테스적 자아의 인식에서 자신을 '돌보다'라는 관념이 그동안 서구 사회에서 은폐된 이유를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법칙과 금욕주의 때문에 부정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동양의 문화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진지하게 숙고된 자기 배려가 궁극적으로는 이웃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동안 간과해왔다고 푸코는 지적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막연한 이타주의와 편협한 이기주의 사이에서 배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저마다 '자기'를 외치는 거리에서, 무질서와 방종, 배타적 향락을 추구하는 언덕에서 진정한 의미로 자신을 배려하는 소크라테스적 자아의 인식을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해보아야 한다는 상념에 젖어본다. 

 

쓴이 /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
·생명다양성 재단 이사장

·세계시민기구(WCO) 철학종교분과 위원장
·전 서강대 대학원장
·전 한국철학회 회장

·계간 철학과현실 편집인

 

※ 글 내용은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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