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선, 엄창섭 두 동문이 가지고 있는 명동의 추억
2019.03.12 09:28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추억이 많았던 곳이죠.
대학교 1, 2학년 땐가 명동에 있던
프랑스 어학원에 저녁 반에 다니면서 명동 거리를 많이 걸었죠.
왜 그랬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명동에서 소공동, 시청 앞, 덕수궁 담 길로 해서 서대문 네거리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홍제동에 있던 집에 갔었던 같습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걸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공상을 해봅니다, ㅎㅎㅎ.
그때 프랑스 어학원에서 문리대 불문과 이희영 원로교수의 강의를 들어서 기고만장했던지
당시 대학 교양과목이었던 프랑스어를 등록해 놓고
출석을 한 번도 안 하고 나중에 시험을 잘 쳤는데 출석 안 했다고 F를 받았습니다.
필수 과목이어서 4학년 때 재수했죠. 아, 옛날이여!
< 글/ 박일선 >
명동에 가면
항상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선 동문과 함께 영어회화 공부하러 다니던
학원 건물을 찾아가 보곤 하지요!
어제도 이 태영 동문에게 저기가 그 건물이었다고 지난날을 되돌아 보기도 했소이다.
서울에 온 촌사람에게 처음으로 미국인에게
공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한 일선 동문 이야기는 언제나 하고 다닙니다.
그때 일선 동문이 교실에서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 글/ 엄창섭 >
아, 그랬구나.
내가 1학년 때 어떻게 엄 창섭 동문과 친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내 뒷자리에 앉아있어서였네. 내 옆에는 박 희서와 이 장작이 앉아있었고.
영어회화 배우는 것은 내가 엄 동문을 인도했는지 모르지만
그 후로 영어회화 활동을 리드한 것은 엄 동문이었고 나는 보조 역할만 했지.
그렇게 아마 대학교 2학년 때까지 활동을 하다가
내가 학보로 군에 입대한 다음부터는 활동 무대가 달라졌는지 더 이상 함께 한 기억이 없네.
< 글/ 박일선 >
댓글 7
-
엄창섭
2019.03.12 10:15
-
박일선
2019.03.12 10:29
기발한 착상이네. 나와 엄창섭 동문의 댓글을 모아서 글을 만들고 사진을 올리다니. 갑자기 그때가 지금보다 좋았지 않았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드네. 옛날 추억은 항상 그런 모양이야.
명동 추억을 하나 더 보태지.
대학교 1학년 때였지. 갑자기 섭외가 (차출?) 들어와서 한달 간 우리 김석하 동문 영어회화 가정교사 노릇을 했지. 내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가정교사였지. 아마 그때 김석하 동문이 한국대표로 일본에서 열리는 빙상경기 참가를 앞두고 있었을 꺼야. 외국 나가는데 영어 몇 마디라도 해야 좋을 것 같다는 김석하 부모님의 (어머님) 생각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한달 동안 명동 한 가운데 있던 김석하 집에 아마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가서 한 시간씩 간단한 영어회화를 가르쳤지. 석하 집은 아래층은 아마 석하네서 경영하는 가게였고 (금은방?) 이층이 집이었을 꺼야. 석하 아버님은 근엄하고 말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활동적이었고 친절하셨지. 석하는 강의 10분도 안 되어서 졸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강의가 제대로 안되었지. 그리고 가끔 (자주?) 석하가 어머니에게 함께 근처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나가서 나를 명동거리에 있던 극장에 공짜로 집어넣고 어디 갔다 한 시간 후에 나타나서 집으로 돌아가서 석하 어머니에게 "공부 잘하고 왔습니다." 했지. 그때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무섭던 석하는 양처럼 순하게 느껴졌지. 그렇게 한달 동안 엉터리 가정교사를 하고 석하 어머니로부터 두두한 봉투를 받고 떠났지. 공짜로 받은 것 같아서 많이 미안했지. 나중에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산다는 말을 듣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척 거리인 샌호세로 이사갔을 때 40대의 석하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고 궁금해서 만나보려고 찾아봤더니 얼마 전에 하와이로 이사했더라구. 그후 언제 타계했는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못 만나봤지.
-
김동연
2019.03.12 20:57
명동에 얽힌 두 분의 멋진 추억이 재미있습니다.
명동의 추억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한 개 이야기 하자면,
대학 졸업 연극을 명동예술극장(그 당시 국립극장)에서 했는데
가슴 두근거리면서 무대위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레이터(영어로)를 맡아 했었답니다.
연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나레이터를 원했는데 교수님이 시켜주셨지요.
나의 작은 빛나는 추억으로 자랑스럽게 남아있지요.
명동예술극장에 갑자기 한 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
이은영
2019.03.13 00:09
명동거리를 다시 한번 멋지게 보여주십니다.
두분의 멋진 추억을 읽어보면서 많은 추억이 떠 오릅니다.
4.19날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명동 시공관에 영화 <키리만자로>를 보러갔는데 서울대학 남학생들이
극장안으로 피해와 웅성거리는데 이상하다고 생각 하면서도 영화를 다 보고 바보같이 다시 학교로 갔다가
4.19 데모를 만나서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신촌에서 서대문 3거리를 거쳐 죽자살자 빠져 나와
이화여고에 다니는 여동생을 데리고 성북동 집까지 죽을뻔 하면서 오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명동이 제일의 나들이 거리였지요.
-
황영호
2019.03.13 10:22
박일선 엄창섭 두 동문의 까마득히 흘러가버린 세월 속에 묻혀있던
구슬처럼 영롱한 아름다운 젊은 날의 추억들이 봄 새싹처럼 돋아나는 구나!
그 옛날 서울속의 서울 한복판 ,
명동에서 생생히 솟아오르는 젊은 날에 꿈을 찾아 이루던 끝없이 추억해 보곺은 보람의 날들이 자랑스럽겠구나.
먼 지난 날의 회상에서 명동에서의 시골 촌놈의 일화를 더듬어보면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아주 어수룩한 시골 촌놈이 서울 사대부고를 합격해서 서울에 처음 올라온 지 겨우 여섯 달이 지난 개천절 날이였다.
우리 학교가 남녀 공학이라
서울사대부고에서 그해 시공관에서 열리는 개천절 기념행사의 개천절 노래를 부르기로 문교부에서 지정된 모양이였다.
그야말로 음치에 속하는 이 시골 촌놈이 그 합창단에 어찌하야 선발되었는지는 지금도 도무지 의아하지만
여하튼 행사 몇칠 전부터 여학생 남학생 모두 한 40명(?)가량 강당에 모여 4중창 연습을 한후 개천절 당일날 시공관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개천절 아침에 학교에 나오니 벌써 다른 동료 친구들은 이미 시공관으로 떠나버린 상태였고 나는 명동이 어디에 있는지 시공관이 어딘지를 모르는,
당황한 마음에 누구에게 물었는지도 모르고 황급히 명동으로 허겁 지겁 달려와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면서 시공관을 찾는 데 ,
정부 3부 요인이 참석하는 행사라 주위의 경계는 삼엄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고있는데 마침 그곳을 경비하고 있던 기마병 경찰 아저씩의 친절한 도움으로 마침내 시공관으로 무사히 들어가게되었지, 휴~ 등에는 땀이흐르고...
함창단 모두가 이층 좌석에 질서 정연한 자세로 모여있는데, 그 조금 늦게 도착한게 이 시골 촌놈에게는 얼마나 부끄럽고 쑥스러웠는지 당시는 쥐 구멍이라도
있었으면 했지,
그후~
내 마음의 명동에는 그 옛날 나를 시공관으로 안내하며 입장시겨주던 친절한 경찰관 아저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
이초영
2019.03.13 16:22
남동문님들의 명동에 얽힌 추억을 읽으면서 나도 학창시절, 젊은 시절,
명동과 얽힌 추억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이 납니다.
그중에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그곳,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이지만
혹시 인터넽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훑어 보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반갑고 그 옛날이 그리워져 올려 봅니다.
미도파 길 건너 명동입구 뻐쓰 정거장 근처 빵집 "뉴욕제과"
명동극장에서 조조할인 영화보고 12시에 끝나고, 빵집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만나러 갔지요. 약속한 사람 뒤로 카키색 군복 바지에
빤질 빤질 닦은 검은 구두를 신은 육군 일등병이 따라 들어 왔어요.
그날 곰보빵 하나 얻어 먹고 ( 1962 4학년때 ) 오늘 까지
57년 발이 묶여 있네요.
61년도 명동입구. 뉴욕제과 간판이 보이고
길 건너에 미도파가 있고
돈암동 전차타고 많이 다녔지요.
-
김영은
2019.03.13 19:41
두 친구분의 추억이 얽힌 오늘날의 명동과 스토리 멋진 테마입니다.
아득한 젊은 날로 돌아가 신나게 추억 실마리를 풀어 내니 재미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 두개의 이야기 거리는 있음직한 추억의 명소였지요.
결혼하기 직전까지 다니던 회사가 명동에 있어 본의 아니게 유행을 선도하는 곳에서
활보했고, 먼저 결혼한 경희가 지금은 영동세브란스 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로 있는 첫 아들
임신했을때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명동에서 유명한"서린관"에서 사 준 기억이 납니다. 경희야, 생각 안 나지?ㅋㅋ
지금은 고인이 된 중신아비 남편 친구가 깜짝 데이트 장소로 유인한 곳도 명동의 "청자"다방이었답니다.
잊고 살았던 아주 까마득한 옛 추억이에요.
번호 | 제목 | 이름 | 날짜 | 조회 수 |
---|---|---|---|---|
15307 |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7] ![]() | 이태영 | 2019.03.21 | 197 |
15306 | 불꽃처럼 살다 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 | 심재범 | 2019.03.21 | 4386 |
15305 |
시리아 여행기 - 시리아 여행 마지막 날, Allepo (속)
[6] ![]() | 박일선 | 2019.03.21 | 115 |
15304 |
봄처녀
[12] ![]() | 김동연 | 2019.03.20 | 144 |
15303 | 연습 | 심재범 | 2019.03.20 | 89 |
15302 | 글쓰기연습및 수정하기 연습 | 심재범 | 2019.03.20 | 130 |
15301 |
김현진 강사님 제2 특강
![]() | 김인 | 2019.03.20 | 112 |
15300 |
오늘 인사회 결석하고 궁금해할 친구들에게(삭제용)
[6] ![]() | 이정란 | 2019.03.20 | 126 |
15299 |
시리아 여행기 - St. Simeon Basillica 유적
[2] ![]() | 박일선 | 2019.03.20 | 85 |
15298 |
출연 양은숙, 촬영 이은영, Gif 엄창섭, 삼인의 콜레보(Collaboration)
[7] ![]() | 엄창섭 | 2019.03.19 | 171 |
15297 | 한국인이 좋와하는 Love classic [1] | 심재범 | 2019.03.19 | 92 |
15296 |
시리아 여행기 - 시리아 최대 도시, Aleppo
[4] ![]() | 박일선 | 2019.03.19 | 15440 |
15295 |
용두동 사대부중 교문을 들어 서든 날 (1955)
[9] ![]() | 이초영 | 2019.03.19 | 256 |
15294 |
봄에 피는 노란 꽃 '산수유'
[6] ![]() | 이태영 | 2019.03.18 | 577 |
15293 |
시리아 여행기 - 십자군 성, Crac des Chevaliers
[2] ![]() | 박일선 | 2019.03.18 | 103 |
15292 |
산우회 3월 모임 안내
[6] ![]() | 정지우 | 2019.03.17 | 196 |
15291 | LALA - 봄의 전령사 (매화) [7] | 최종봉 | 2019.03.15 | 138 |
15290 |
매화의 꽃말
[6] ![]() | 이태영 | 2019.03.15 | 386 |
15289 |
시리아 여행기 - 거대한 물바퀴가 있는 아담한 도시 Hama
[6] ![]() | 박일선 | 2019.03.15 | 126 |
15288 |
시리아 여행기 - 로마제국 유적 Palmyra (속)
[6] ![]() | 박일선 | 2019.03.14 | 109 |
15287 |
3월 20일은 인터넷강의 2번째 날입니다.
[10] ![]() | 김동연 | 2019.03.13 | 162 |
15286 |
시리아 여행기 - 로마제국 유적 Palmyra
[8] ![]() | 박일선 | 2019.03.13 | 90 |
» |
박일선, 엄창섭 두 동문이 가지고 있는 명동의 추억
[7] ![]() | 이태영 | 2019.03.12 | 385 |
15284 |
시리아 여행기 - 수도 Damascus
[6] ![]() | 박일선 | 2019.03.12 | 92 |
15283 | 제주 주상절리대 산책 공원 [12] | 김영은 | 2019.03.11 | 168 |
세월이 감에 따라 명동의 모습은 변하지만 명동에 얽힌 추억은 항상 가슴속에 묻혀 있지요!
이사부가 올린 사진과 글이 1956년에 있었던 아름다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messenger
역활을 해주어 감사 하게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은 대학1학년때 박일선동문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