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굉우의 빈소에 다녀와서
2019.12.24 15:20
어제 23일, 의정부의 이굉우의 빈소에 다녀왔다. 박희서, 민영주가 동행했다. 두 사람은 청량국민학교 동창이고 얼마 전까지도 매월 토요일 점심 모임을
같이 했던 꾀복쟁이 친구들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만 굉우와 같은 반이었는데, 굉우를 잘 기억하는 것은 교실의 자리가 나와 가까웠고, 굉우만 "너, 점심은
어디서 먹느냐?"고 물어본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수도물만 먹은 뱃속으로는 그의 관심이 고마웠다. 그래서 그의 빈소를 간 것이다.
나이 80에 "설렁줄"이라는 진짜 소설을 썼기에 굉우한테 보내고 읽은 뒤에 독후감을 말해달라고 했었는데, 적어도 나한테는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나서 놀라서
의정부까지 전철로 1시간 반을 보내며 갔다가 왔다. 빈소에서 그의 부인에게, "내가 소설 책을 써서 보내며 독후감을 말해달라고 했는데, 읽지도 않고 가버려서 혼내줄려고
왔다."고 했다. 그냥 빙긋이 웃는 부인의 눈모습에 나는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 했다. 혼내주지도 못하고 그냥 집으로 와, 그냥 하루를 보내고 지금 다시 컴퓨터 앞에서
답답하고, 어쩌지 못하는 기분을 가라 앉히려고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틀었다. 집에 아무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흐르는 눈물을 이렇게 훔치며 자판을 두들긴다.
오늘은 어제보다 기온이 따뜻한데도 창문을 열었더니 가난했던 슈베르트가 느꼈을 법한 찬 바람이 휙 불어 닥치며 내 눈물을 날려버린다.
굉우가 만날 아베마리아를 다시 반복하며 눈을 감았다. 굉우는 천주교 신자이니 천주님을 뵙고 평안하게 있을 것이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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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 자네도 어제 굉우 빈소에 다녀갔었구나?
난 22일 아침 일찍 굉우 아들로부터 갑작스런 아비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를 받고 23일 아침 버스로 의정부 연세요양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굉우 빈소를 찾아
황망이 올라갔었다네, 나는 굉우와는 고등학교때는 한 번도 같은반에서 공부를 못했고, 대학에서 만났지,
굉우는 육사를 지원했다가 신체 조건 미달로 불학격의 불명예를 격었고, 다음 해 서울 공대에 합격했으나 학비 관계로 경희대 장학생으로 경제학과로 옮겼고,
나는 서울상대 경제학과를 두번이나 낙방을 하고 말할 수 없는 열등감과 실의 속에서 경희대 경제학과에 무시험 입학으로 굉우와 다시 만났지.
대학을 마치고 굉우는 삼호무역에 입사했고 나는 공군간부 후보생을 거쳐 공군장교로 임관해서 자주 연락을 끊지않고 인생을 동행했었지,
굉우는 삼호무역에 입사한지 일년만에 회사 중역들의 방만한 회사 경영을 보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신한은행의 전신인 조흥은행에
응시해 입사를 하게되고 여기에서는 승승장구 진급이 빨랐으나 여기에서도 역시 상사의 부당한 업무지시에 따르지않는 굉우의 올곧은 소신때문에
금융감독원 간부직 근무에서 변두리 지점장으로 밀려났었지,
그러나 자신에게 돌아온 불이익에 후회하거나 그들에게 분노하거나 비굴한 타협없이 올곧고 순박하게 살아온 굉우를 바라보면서
늘 내 부족함을 채워주던 둘도 없었던 친구 였다네.
이제 나는 이유없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 앞에서도 양볼이 찢어질 만큽이나 크게, 의연하고 악의없이 웃는 굉우만의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게되어 말할 수 없이 그립고 슬프다네.
그래서 나는 어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미련없이 가버린 굉우의 영전앞에 업드려 펑펑 울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