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풍진 세상에도 봄은 옵니다.
2020.02.25 19:50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이 풍진 세상에도 봄은 옵니다
문화부장
열린 참혹한 교통사고로 두 눈 잃은 화가의 그림에 노란 햇살 일렁입니다 눈 감고 다시 세상을 보니 돈과 권력과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일 뿐 가난한 풍경 한 점이 위로 된다면 그보다 큰 기 쁨은 없을 겁니다
새순이 고개를 내밉니다.산수유 노랗게 핀 신작로를 따라 외딴집 꼬마 들은 재잘재잘 학교로 가겠지요.모처럼 마실 나온 할머니는 밭두렁에 앉아 볕바라기하고요,찬거리 장만하러 종종걸음하는 아낙네를 누렁이 한 마리가 쫓아갑니다. 해 질 녘 강물은 왜 저리 맑고 서러운지. 나도 모르게 풍덩, 그림 속으로 뛰어듭니다. 습니다.가난한 산골 풍경이지만 화폭 가득 내리쬐는 햇살이 언 땅을 녹이듯 세파에 찌든 뜨내기의 가슴으로도 번집니다. 어린아이가 그린 양 삐뚤빼뚤하고알록달록하지만, 그래서 재미납니다. 외딴집 가만가만 훔쳐보니 누군가 장지문 열고 나와 "뉘시오!" 물을 것도 같고요, "밥 한술 뜨고 가시라" 툇마루로 손짓할 것만 같습니다. 다. 그림을 그린 화가 박환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빛과 어둠조차 가늠 할 수 없는1급 장애인입니다. 7년 전 교통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었 습니다.대수술 끝에얼굴 절반의 감각도 사라졌습니다. 혀의 절반이 마 비돼 음식 맛을 알지 못합니다.입 주위 근육마저 굳어버려 화가의 이야 기를 들을 땐 귀를 쫑긋 세워야 합니다. 독학으로공부하다 군 제대 후 30년간 그림 팔아 생계를 이었습니다. 단지 밥벌이가 아니라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부식된 나무, 곰팡이 슨 합판을 재료로도 사용했습니다. 제법 근사한 작품이 탄생해, 코엑스에서 박람회에서 화제가 되고 그림 값도 껑충 뛰었습니다.
형체를 알 수없을 만큼 얼굴이 부서지고 뇌혈관이 터졌습니다. 의사는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했지만, 화가에겐 지옥이 찾아왔 습니다. 새까만 암흑은 공포이자 죽음 이었습니다. 그림을 못 그릴바에 야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여러 번 나쁜마음도 먹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내게만 이 고통을! 그러던 어느 날, 그림자 처럼 따르며 수발하던 여동생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다시 그림을 만의 일입니다.연필의 따뜻한 촉감, 그윽한 종이 냄새가 코끝에 닿자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더듬더듬 나무와 바위와 풀꽃과 강물을 그렸 습니다. 실패의 연속입니다. 화가는 연필 대신 실로 스케치하기로 합니다. 화판에 핀을 꽂아 구도를 잡은뒤 윤곽을 알게끔 실을 붙여 가며 밑그림을 그립니다. 색칠은 붓 대신 손가락으로 합니다. 손끝에 닿는 물감의농도를 가늠해 필요한 색을 찾아 칠합니다. 수백 수천번 실패 끝에 마침내 화폭에는 초록 나무와 둥근 집들이, 작은 꽃길과 올망졸망한 마을이 태어났습니다. 열흘이면그렸던 그림을 이젠 두 달 만에 완성합니다. 절망이 엄습할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애창곡을 흥얼거립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당신이 그린 게맞느냐고, 한쪽 눈은 보이는 거 아니냐고. 왜 주로 봄 풍경을 그리느냐고도 묻습니다. 봄볕을 타고 퍼지던 들판의 흙내음, 얼음장 뚫고 흐르던 계곡물 사이로 와글거리던 햇살이떠오릅니다. 한 남자는 화가의 두 손을 잡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사업에 실패해 생을 정리하려 했다던 그는 "당신의 그림을 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억척을 부리는 이들에게,담소화락에 엄벙덤벙 사는 이들에게, 물불 안 가리고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하는 이들에게,그리 하면 희망이 족한 것이냐고 소년이 묻습니다. 화가는 말합니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려던 나의 꿈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노라, 단 1분만이라도 눈을 뜰 수 있다면 햇살을 보고싶다고, 보이지 않아 좋은 건 사람들의 화난 얼굴 이요,내 볼품없는 그림에서 희망을 얻었다.는 분들 있어 감사하다고.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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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0.02.2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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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2.26 10:03
그래요 김동연 님,
어느 시각 장애인의 슬픈 사연이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느 다른 귀한 것 보다도 한 순간의 햇살을 보고 싶어 하는 애절한 마음이
봄이 찾아오는 어느 산속 마을의 가난한 풍경에 소복이 담겨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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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0.02.26 01:59
슬픈 사연을 한국의 정서를 담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그린 글입니다.
글속의 화가가 부디 용기를 잃지 않고 헬렌 컬러처럼 역경을 승화시키는
화가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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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2.26 10:29
김승자 님의 고운 심성이 전해오는 댓글입니다.
죽음과도 같았던 실의와 절망을 딛고 희망을 이어온 글 속의 화가야말로
가슴저려 오게 하는 고운 그림으로
벌써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보람으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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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2020.02.26 05:57
아트페어에도 출품까지 하던 한 화가의 큰 꿈이 순식간에 무너졌어
하지만 여동생의 권유로 다시 붓을 든 한 화가의 시작 가슴 아픈 이야기네
앞으로의 힘든 여정 어디까지 가능할 가 하면서
다시 화가의 큰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바라는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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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2.26 13:40
아니야 태영이,
슬프고 불행한 이야기이지만, 박환이라는 화가는 벌써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두 눈을 잃은 뒤 죽음 보다도 무서운 암흙의 세상에서 실의와 절망 속에서도
고귀한 오누이의 정으로 용기를 얻어 수백수천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그려지는
한폭의 동화같은 감동적인 그림이 세상에 일려지면서 세상의 절망에 희망의 불꽃을 부쳐주고 있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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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2020.02.26 17:29
시각 장애인의 슬픈사연이 너무나 가슴아픈 이야기군요.
특히 "내 볼품 없는 그림에서 희망을 얻었다는 분들 있어 감사하다고"
한말 마음에 새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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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2.26 20:13
그렇지요 이은영 님
화가의 마음에는 세상의 부귀영화는 한낮 일장춘몽일 뿐,
절망과 실의의 역경을 딛고 그려지는 한 폭의 볼품없는 그림일망정
그 그림에서 희망을 얻은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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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2020.02.27 00:14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환호의 팡파레를 울리는 박환 화가..
와글거리는 햇살을 떠 올리며, 들판 계곡물 흙내음 속에
따스한 봄볕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면서 그토록 절절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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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2.27 11:02
눈을 감고 세상을 다시 보면
권력이며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봄이 오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올망졸망한
어느 산비탈 언덕 위의 외 딴집 가난한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두 눈이 멀게 된 화가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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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2020.02.27 20:19
인생은 사건의 연속입니다. 사건자체가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건에 어떻게 대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해주는 귀중한 글이라고 생각 합니다. "눈을 뜰수 있다면 햇살을 보고 싶다고" 하는 희망이 이루어 지기를
기도 해주고 싶습니다! (Life is 10% what happens to me and 90% how I react to it.:이미도의 무비 식도락 15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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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2.27 20:47
그래요 엄 형, 불행한 사고로 두 눈을 잃었지만 박환이라는 화가는 끝내 희망을 버리지않고
귀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보내주고 있어요.
세상에 기적이 있다면 저 두 눈을 잃은 화가에게 한 줄기의 봄 햇살을 바라볼 수있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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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이런 처절한 상황에서 태어난 작품은 농도가 짙어 명작이 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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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0.02.27 21:35
그렇지요 성 박사,
세상에 명성을 떨치고 입신출세가 자신만만했던 화가 앞에 졸지에 찾아온 불행한 사고로
두 눈을 잃고만 절망과 실의는 상상이 안되지요.
그러나 끝내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죽음과도 같았던 암흑의 아픔을 딛고 만들어내는 역작,
어느 시골 마을에 햇볕 쏟아지는 봄이 찾아드는 가난한 풍경은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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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여미면서 읽어야하는 글입니다.
'단 일분만이라도 눈을 뜰 수 있다면 햇살을 보고싶은 사람'
암흑속에서 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자주 떠올리면서
현실의 불안을 잊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