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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했던 6·25, 캐나다 돌아가 한국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6·25 70년, 아직도 아픈 상처]

[1] 참전용사 빈센트 코트니

 

"한동안 한국은 나에게 '죽음'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공포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그때 우리들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느낍니다."
캐나다 출신 6·25 참전용사 빈센트 R. 코트니(Vincent R. Courtenay·86)

씨는 19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7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끔찍했던 경험(unnerving experience)이 또렷하다"며 감회를 밝혔다.


6·25전쟁 당시 한국으로 파견된 캐나다군은 2만6000명. 전사자가
516명으로, 참전 국가 중 다섯째로 많았다. 코트니씨는 1951년 16세의
나이에 참전해 1년간 복무했다. 학교를 자퇴한 뒤 크라이슬러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다 한국에 온 것이다. 그는 "부친이 1차 세계 대전에서
영광스러운 상처를 입은 군인이었다"며 "그 아들인 나에게 자원입대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했다.

 



캐나다 출신 6·25 참전용사 빈센트 코트니씨가 지난 2019년 11월
온타리오주 윈저 자택에서 훈장을 달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가을, 코트니씨가 한
석상(石像)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이 폐허에서 꽃피운 모든 것에 존경을 표한다”며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한국인들이 계속해서 증명해달라”고 했다.
/빈센트 코트니 제공

캐나다 앨버타에서 군사 교육을 마친 뒤 미군 수송함에 몸을 싣고
부산항으로 들어간 그는 "공포와 두려움의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퍼트리샤 공주 캐나다 경보병연대(PPCLI)에 배속된 그는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제2차 후크고지 전투(1952년 11월 18~19일)'
등에서 싸웠다.

코트니씨는 비좁은 기차를 타고 올라간 전장(戰場)의 최전선은 "참혹
그 자체였다"고 했다. "배에 총을 맞고 쓰러진 동료의 피부가
녹색빛으로 변해가던 걸 잊을 수 없습니다. 한번은 3일을 꼬박
밤새우며 카펫처럼 납작해진 시체 위를 다녀야 했어요."
그는 "폭탄이 터지면 그때마다 지구가 흔들리는 기분이었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뱀처럼 기어다녔다"며 "운이 좋아서 아무도 죽지 않으면
그제야 안도했고, 적의 다음 공격을 기다리면서는 그저 살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기자와 홍보 컨설턴트
등으로 일한 코트니씨는 "죽음, 공포와 두려움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땅인 한국을 40여 년간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갖은 전쟁
후유증과도 싸웠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한국의 상전벽해를 알게 됐다. 이어 90년대 들어서는 사업차 서울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코트니씨는 "김포공항으로 입국했을 때 감동을 잊지 못한다. 땅바닥에
꿇어앉아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고 했다. 그는 "세계 각 분야에서 선두를
질주하는 한국과 한국인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레 여기는 기여(contribution) 중 하나"라고 했다.
코트니씨는 이후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캐나다 출신 참전용사를
재조명하는 일에 앞장섰다. 방한 횟수만 40여 회에 이른다. 지난
1997년 부산의 UN기념공원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곳엔 유엔군2300명, 캐나다 전사자 378명이 잠들어 있었다. 그는

"빛바랜 청동장식판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6·25를 기억하지 않고,

전우들을제대로 추모할 계기조차 없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캐나다한국참전기념사업회 디렉터로 참전용사를 기리는 사업을
벌였다. 부산과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 캐나다 전몰용사 기념비를 세웠다.

국가보훈처와 부산시가 지난 2007년부터 개최하는 '턴 터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6·25 참전 유엔군 전몰장병을 기리자는
뜻에서 UN기념공원을 향해 묵념하는 추모 행사다. 이런 공로 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엔 부산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코트니씨는 현재 한국인 아내와 재혼해 온타리오주의 윈저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그는 "올해 안에 전우들을 만나러 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한국이 폐허에서 꽃피운 모든 것에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희생이 숭고했고,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한국인들이 계속해서 증명해 달라"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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