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미의 어떤 시( 조선일보)
2021.02.09 11:50
곧은 길 가려거든
어려운 때 정좌(正坐)한 채 장부 못 됨을 한탄하나니 나쁜 세상 만난 걸 어찌하겠소.
모두들 봄 꾀꼬리의 고운 소리만 사랑하고 가을 매 거친 영혼은 싫어들 하오.
세파 속을 헤매면 웃음거리 될 뿐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
장한 뜻 세운들 얻다 말하고 세상 사람 상대해서 무엇 하겠소.
-최치원 (崔致遠·857∼?) (김수영 옮김)
낯선 땅에서 얼마나 요지경 험한 꼴을 봤으면 이런 시가 나왔을까. “봄 꾀꼬리”와 “가을 매”의 대비가 절묘하다. 스물다섯 살이면 한창 봄인데, 그대는 어이해 가을 매의 서러운 노래 부르나.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直道能行要自愚)” 를 쓰고 4년 뒤에 최치원은 신라로 귀국했다. 나쁜 세상, 어지러운 신라를 구하고자 진성여왕에게 시급히 해야 할 일을 적어 올렸으나, 시무십여조는 시행되지 못하고 그는 전국을 유람했다. 해운대 해인사…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최치원 선집에는 재미난 시가 많다.
“청산이 좋다는 말 마오. 정말로 산이 좋으면 뭣 하러 나오시오?” (산에 사는 중에게) “시비 다투는 소리 들려올까 늘 걱정되어 짐짓 흐르는 물로 산을 감쌌네.”(가야산 독서당에 적다)
고운(孤雲) 최치원은 경주 최씨인 나의 오래된 조상이다. 불현듯 해운대에 가서 바위에 바닷물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사 잊고 싶어라. 조선일보 구독: 심심풀이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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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1.02.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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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1.02.09 22:54
김동연 님은 일찍이 최영미 시인을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다만 조선일보의 지면을 통해서 알고있을 뿐이랍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에 우리 늙은이 마음이 이다지 답답하고 암울한 기분인데,
시인의 마음이 오죽했으면 자기네 조상 최치원의 시무십여조를 떠올렸을가요?
새삼 반가운 댓글을 읽는 마음입니다.
요즘 이 촌노는 동산에 해뜨면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일터에 나갔다가
서산에 해 걸치면 아침에 밟았던 길로 돌아오는 단조로운 일상속에 세월을 보내지요.^^
이 빠른 세상에 그동안 서울이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할 뿐이지요.ㅎㅎ
입춘이 지나니 갯가에 물소리 나무끝에 바람소리 숨었던 봄 기운이 부시시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켜나 봅니다.
고대하던 산책모임 오늘 낮에 반갑게 보았습니다. 상경 노력 하는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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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2021.02.10 08:19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장원 급제 당나라에도 명성을 날린
신라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이 문란한 국정을 통탄해 하며
시무책 십조를 진성 왕에게 올렸지만 허사가된 것이 오늘날의 현세를 비유하는 것 같네
요즘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조은산의 상소문이 생각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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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1.02.10 10:17
아침에 신문을 보다가 천년의 한을 품은 듯 자기네 조상 최치원의 시무십여조를 떠올리며
지금의 나쁜 세상 바로잡지 못하는 답답함과 아타까움을 은유하는 최영미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바 있어 심심풀이로 올려보았다네. 여전히 아침으로 산책을 나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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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2021.02.10 09:21
영주 촌노 본지 오래 되었네. 이대로 계속되면 얼굴 잊어버리겠네. 참고로 Widkipedia에 나온 최치원의 소개 글을 아래에 올리네. 최치원이 살았던 때도 난세였다니, 알고 보면 난세가 아닌 적이 없었던 것 같군. 지금도 난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신라 말기 6두품 출신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시조 최치원(崔致遠)은 진한(辰韓) 사로(斯盧) 돌산고허촌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다. 최치원은 869년(신라 경문왕 9) 12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간지 5년후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무랑시어사에 이르고 자금어의를 하사받았으며, 제도행영 병마도총 고변의종사관을 역임하고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병부시랑 지서서감이 되었으나 외직을 원하여 대산, 천령, 부성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고 아손이 되었다. 그 후 난세를 비관하여 전국을 유랑하다가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며 수도하다 생을 마쳤다. 그는 한시문집으로 '계원필경(桂苑筆耕)'(20권) 등의 명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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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1.02.10 10:54
얼굴 잊기전에 오랫만에 한번 만나야지. 어느새 또 한 해가 바뀌고 오늘이 벌써 2021년 중 한달이 훌쩍 지나가버린
2월 한달도 구정을 지내고 나면 며칠 남지않겠지.
어제 산책모임 반가운 소식 보았네,
경주 최씨의 시조 최치원의 소개글을 올려준 고마운 친구 만나려 왠만하면 18일 상경해서 좋은 하루 함께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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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2021.02.10 15:08
신라시대 최고의 문필가로 인정받는 최치원의 좋은 시를 이해하도록 채근하는 유익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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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1.02.10 15:58
엄 형, 소인은 최치원 선생의 높은 명성이야 보고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라가 무너져가고 백성이 도탄에 빠져가는 당시의 나쁜 세상을 바라보며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실은 선생의 시를 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지요.
당시 어찌하여 곧은 길을 가려거던 어리석어야 만 되었는지? 이해가 안되는 구려!
참으로 난세였는가 봅니다. 장삼이사 필부필부 마져 세상 걱정을 하는 요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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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2021.02.10 18:17
최영미씨의 시를 많이 좋아 하십니다.
"곧은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난세는 그대로 되풀이 되는 세상입니다.
동기생님이 올리신 글이 너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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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1.02.10 21:03
저에게는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시 니 수필이니 하고, 좋아할 처지가 아니였잖아요.
고향에 내려와서 책과는 담을 쌓고 석탄 가루속에서 한 평생 살아온지도 50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가끔 신문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인사회에서 익힌 html로 올려보는 재미로
이렇게 우리 홈피에나 올리는 것을 동기생님이 너무 잘 아시면서....
어쨌든 의미가 있었다니 기쁨니다. 동기생님! 자주 연습하겠습니다,ㅎㅎ
바른 말 잘하고 열정적인 시인으로 알고 있는 최영미씨가
어인 일로 그 옛날 최치원의 시를 가지고 나왔을까요?
바위에 부딪치는 바닷물소리 들으며 세상사 잊고 싶은 사람은
우리 같은 늙은이나 할 소리지요.
최영미씨 같은 젊은 사람이 바른말을 하면서 옳은 일을 위해서
열심히 싸워줘야 할텐데...
황영호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인사회에서 뵙지 못하니 얼굴 잊어버리겠습니다.
서울 나들이 한 번 하시지요. 요즘 햇살에 봄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