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사랑 이야기' 공모전 대상 작품
2021.03.02 11:08
'첫사랑 이야기' 공모전 대상 작품
■ 이루지 못한 사랑 ■
맹 영 숙 / 대구 수성구
어머니 생신날이다. 밤바람이 찰 것 같아 창문을 닫으려고 하니 어머니가 닫지 말라고 하신다. 물론이고 한국전력에 다녔다는 것도 또렷이 기억하신다.
시들어버린 가슴 아픈 이름이다.
호주인 의료 선교사가 설립한 '베돈 병원'의 간호사였다. 병원에서 기독교를 접하게 되어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의사들에게도 환자들에게도 인기 좋은 간호사였다.
겸허한 성품을 지닌 성실한 사람이었다. 종종 말을 하였다. 베돈 병원에 환자가 늘어나자 옥희도 바빴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고 밤별을 머리에 이고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들려왔다. 몇 미터 간격을 두고 남준의 자전거는 옥희의 새벽길을 밝혀 주었다. 병원 정문에 이르면 자전거에서 내려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자전거 불빛으로 안전하게 동행하며 밤 인사를 하고 돌아서곤 했다.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다.
주위를 비를 맞고 배회하다 독감에 걸리고 만다. 사랑을 잃은 절망은 폐렴으로 전이되었다. 고열로 사경을 헤매는 순간에도 옥희를 보고 싶어 했다. 방문 문고리에 자물쇠가 잠겨 나갈 수도 없었다. 병상에서 남준은 옥희를 부르며,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마지막 숨을 거뒀다. 옥희는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세상을 한탄하며 몸부림쳤다. 죽었다고 수군거렸다.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이 나왔다며 내놓았다. 옥희의 사진이었다.
내 어머니 박옥희 여사 역시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둔 채 부모가 정해준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칠십여 년 가정에 충실했다. 남편 내조에 소홀함 없는 현명한 아내였다. 오남매 자식들 알뜰살뜰 키워내셨다. 그 덕분에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놓으실 때면 마치 일인다역을 하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 같았다. 환하게 빛을 발하며 피어난 것이다.
예배 참석을 위해 단아하게 몸단장을 하고 며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느리가 나와 보니 어머니는 교회 가방을 안고 거실 소파에 잠든 듯 눈을 감고 앉아 계셨다. 어깨를 살짝 흔들었더니 스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어머니는 어린 아이 같은 눈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평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자전거를 끌며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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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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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
2021.03.0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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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1.03.02 21:54
친구가 보내주어서 읽었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한 자도 버릴 것이 없이 잘 쓴 글이지요?
꼭 내가 '남준씨'를 사랑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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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2021.03.02 18:31
글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머릿속에는 영상으로 만들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오후 6시 30분, 가슴이 먹먹하네요... 아름다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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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1.03.02 22:06
아름다운 사랑이었지요. 평생을 가슴에 묻어 두었는데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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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2021.03.02 18:52
읽으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과 음미를 해보게 되는구나.
읽을수록 마음을 적시는 이런 글도 있구나 한참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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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1.03.02 22:10
애닲은 한국적 사랑이야기, 흔한 이야기인데
글을 잘 써서 그런지 읽는이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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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1.03.02 20:33
살아서 이루지 못한 그 애틋한 첫 사랑, 영혼으로 이어져 이승에서 아픔니다.
한 평생 90년 긴 세월 남몰래 기슴 깊이 꼭꼭 묻어놓았다가 천국의 문에서 다시 마주하네.
장독대에 붉게 피었다가 입 앙 다문 분꽃 같은 그 사랑, 지고지순한 어머님의 첫 사랑.....
첫 사랑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이루어지기 힘드나 봅니다.
소나기마을 '첫 사랑이야기' 참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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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1.03.02 22:17
"장독대에 붉게 피었다가 입 앙 다문 분꽃 같은 사랑"
표현이 확 마음에 와 닿지요? 글쓴이가 대단한 문학도인 것 같습니다.
첫사랑 이야기는 다 아름답겠지만 이렇게 다듬어진 글은 귀하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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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입니다.
요즘도 이런 가슴 미어질듯한 글을 쓰는 분이 계시군요,
하긴 황순원선생님 문학촌 공모전 참가작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