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가을 나들이
2021.10.14 10:15
2021년 시월 가을나들이
벌써 시월, 개천절과 한글날을 경축하는 천고마비의 시월 상달이 어느틈에
녹음을 키우던 삼복 여름을 뒤쫓아 와서 단풍빛 곱게 물들이며 길목에 섰다.
소리도 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타고 흰눈을 몰고 가을빛을 쫒아버리려는 동장군이
오기 전에 이 고운 가을빛을 가슴 가득히 담아보자고 한걸음 앞장서서 계절을 맞는
북쪽동네를 향하여 길을 나섰다.
미네아폴리스에서 280마일 북쪽, 바다같이 드넓은 Lake Superior의 호반에 자리잡은
Bluefinn Bay Family Resort에 여장을 풀고 뒷뜰로 나가니 호수가 바로 문턱 바위에
파도를 실어와 희롱한다. 바다가 아니여서 잔잔한 물결이라고 조용히 손짓한다.
그러나 우리는 네가 바다하고 무엇이 다르냐고, 어찌하여 바다가 아니냐고 자꾸 묻는다.
산아래 호반에는 해넘어 간 뒤 어둠이 서둘러 나려 앉는다.
오랫만에 거실의 벽난로에 장작불을 피웠다. 추워서가 아니라 쌓아 놓은 장작을 보니
어쩐지 활활타는 불꽃이 보고싶어 졌다고 할가?
마른 장작에 신문지를 몇장 놓고 성냥을 그어대니 금방 불이 붙는다.
혀를 날름거리며 타던 장작불 아래 붉은 숯덩어리가 소복히 쌓여 앉는 것을 보니
화로에 잔 숯을 담아 인두로 다지면서 저고리 동정을 갈아 다리시던 친정어머니의 모습과
보글 보글 끓으면서 늦게 귀가하는 우리들을 기다리던 뚝배기 된장찌개 냄새가 함께
눈앞에 overlap 되면서 왈칵 향수에 젖는다.
정적에 쌓여 깊어가는 가을 밤새 호수에서 잠자던 아침해가 여느 가을 단풍빛갈보다
더 뜨겁게 불타며 검은 호수물에서 서서히 여광을 앞세워 장대한 출연을 한다.
그 준엄하고도 장엄한 모습을 놓칠새라 호수앞 베란다로 맨발로 뛰어나간다.
아, 신비로운 햇님이시여, 물에서 솟아 오르는 그 장대한 모습이라니,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악기없이 연주되고 있었다.
문득 교지에 실렸던 “태양처럼 살지 않으시렵니까?”라던 십대 소녀적의 시가 떠오른다!
우리가 찾은 Oberg Mountain Hiking Trail에는 이미 단풍의 절정이 지났는데도
철따라 모여드는 산손님들을 반가이 맞아준다.
경사는 과히 급하지 않으나 Superior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구비 구비 모서리를 돌며 오르다가
마침내는 호수를 버리고 산속에 안존하게 앉아있는 Oberg호수를 내려다 보며
다시 구비 구비 돌아서 어느틈에 하산을 하면 2.5마일 Trail 산길이 끝난다.
허리 휘인 팔십 노구도 숨바꼭질하듯 단풍숲과 호수를 번갈아 찾으며
쉬엄 쉬엄 걷는 친절하고 다정한 산길이다.
아직도 서쪽하늘 중머리에 걸린 가을 낮은 우리 발길을 주위 백마일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Lutzen Mountain 을 곤돌라를 타고 올라갈 틈을 준다.
겨울철 스키손님들 대신에 가을 단풍관광객을 위해서 운행하는 곤돌라에 앉아
한숨 돌리니 약 15분만에 우리를 산 정상에 데려다 준다.
사방 삼백육십도 광활한 전경이 막힘없이 펼쳐져 있다.
저 멀리 망망한 대해같은 Lake Superior의 수평선이 하늘과 맡닿아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고
산아래 평지에는 호반을 따라 골프코스의 fairway가 여름빛으로 파랗고,
둘러 둘러 산허리에는 Maple의 붉은색보다는 연노랑, 진노랑, 오렌지빛,
누렁, 빨강, 자주, maroon빛, 갈색에다 연두빛, 상록수의 진초록빛들이
하늘을 닮은 바닷빛갈 화폭에 수천, 수만개의 brushstroke들로 내려앉아
눈부신 수채화 무늬의 양탄자를 펼쳐놓았다.
곱기도 해라! 평화롭기는!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해넘어 간 산자락 아래는 어느새 나려앉은 어둠과 함께 찬이슬이 맺힌다.
피곤한 걸음으로 숙소 마당에 들어오니 정자앞에 모닥불이 활활타며 객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함께 왔으면 Marshmallow를 꼬챙이에 끼어 불에 그슬려 구워서
Graham Cracker 사이에 Chocolate를 함께 넣고 Smores를 만들어 호호 불며
깔깔거리며 먹었을 터이다.
아, 아이들이 함께 있으면 소소하게 재미있는 일이 참 많은데
우리는 왜 그런 재미있는 일을 그냥 간과하는걸가?
다음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는 Two Harbors에 있는 Gooseberry Falls State Park에서
여러 형제, 사촌폭포들이 모여있는 듯한 다갈래 폭포들을 둘러가며
다듬어 놓은 나무다리도 건너고 돌계단도 오르 내리며 물소리,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에 한가로웠다.
작년 늦가을에 막내딸 식구들하고 함께 왔을때는 눈얼음이 쌓여 있었지!
그 때 설경도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아이들이 곁에 있으면 채색도 더 화사하고 음색도 더 곱고 기온도 더 따스할 터였다.
딸들이 일러 준 대로 몇십년동안 그 동네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미네아폴리스까지 소문이 자자한
“Betty’s Pie”집에 들려서 아이들에게 가져다 줄 파이를 각가지로 사들고
남편은 개선장군처럼 흥겹게 차를 몰고 곁에 앉은 나는 가을볕에 나뭇잎들이 곱게 익어가는
창밖을 내다보며 지금쯤 황금빛 나락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춤추고 있을 한국의 들판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 Normandale Lake에는 여전히 단풍이 서두르지 않고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왠지 내마음이 호사스럽다.
그래, 올해에는 좀 더 오-래 이 가을을 즐길것이다.
2021년 시월 어느날
김승자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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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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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
2021.10.15 07:10
아무튼 이 여자(승자)! 할말 다 잃었네.
사진과 함께 역거서 쓴 글의 스토리 잘 읽으며
감상 하였네 !!
이제 잃은 말 할말을 찾았답니다.
"아아.. 참 대단하시네" ♡♡♡
더 더 건강하세요. 김포에서 ^^♡. -
김승자
2021.10.15 08:34
김교수님, 오랜만입니다. 무고하시지요?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데 팔십고개를 넘어선 우리가
이렇게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김정숙교수님도 안녕하시지요?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을때 해야함을 새삼 절실히 느끼는 요즈음,
함께 즐거웠던 추억을 나눌 수 있음은 축복이지요.
두분, 계속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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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2021.10.15 09:20
내외분이 아름다운 가을 여행을 하셨군요
풍광이 너무 아름답네요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 즐겼습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의 두 분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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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5 10:55
이선생님, 축지법을 쓸 수 있다면 인사회 야외수업에 참가하여
함께 산책도 하고 음악을 올리는 것도 배우고 싶답니다.
또 인사회원들도 축지법을 써서 이곳으로 오셔서 함께
산책도 하고 공부도 하면 좋겠지요만...
새로 바꾼 컴퓨터에 좀 더 익숙해지면 음악올리는것을
다시 시도하겠습니다.
늘 올리시는 멋진 나들이 사진은 유명한 화가들의 유화를 연상시킵니다.
계속 올리시는 사진속에서 반가운 얼굴찾으며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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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2021.10.15 09:45
시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한 김승자 씨의 글을 읽으면서 옛날에 감명 깊게 보았던 헨리 폰다, 캐서린 헾번 주연의 영화 "On Golden Pond" 생각이 났습니다. 전번에는 서쪽으로 이번에는 북쪽으로, 그리고 작년 겨울에는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로, 외국만 안 나가실 뿐 여행을 자주 하시네요. 이제 곧 한국도 "위드 코로나"로 들어간다니 한국에도 한 번 오세요. 두 분 계속 정정해 보이셔서 함께 유럽 자전거 여행도 충분히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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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5 11:43
박선생님은 워낙 건강하셔서 외국 자전거여행을 계획하시는데
저희는 외국여행은 포기하고 한국에는 꼭 가고 싶은데
아직은 코비드가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니 답답합니다.
여기서 자동차로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나들이하는 것이 고작이네요.
말씀하신 영화, "The Golden Pond"를 다시 보고싶어 집니다.
우리들이 그 stage에 와 있네요.
Enjoy your lif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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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1.10.15 11:23
멋진 수필 한 편과 아름다운 경치사진 감동하면서 읽었어.
두 번 이상 읽어야 너의 수주높은 감성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는구나.
노년을 너처럼 살아야 이상적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
이 세상 끝낼때 다 이루었습니다. 하고 미소지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겠다. 행복감이 충만한 두분의 미소 아름다워!
*다음에는 글자를 좀 크고 굵게 써 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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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5 11:56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다가 들어 줄 사람이 없으니
우리 홈피에서 내 이야기 들어 줍시사하고 썼는데
과대평가하는 호평을 해주니 반갑고 고맙구나.
우리 컴퓨터에서는 글씨가 작다고 생각을 못했는데
새 컴퓨터로 바꾸고 아직 서툴러서 font size를 체크하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고쳐보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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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5 13:29
동연아, 네 말듣고 글자를 14로 고쳤는데 이제 보기에 편해?
글자체도 바탕체를 요구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네.
알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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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1.10.15 20:56
글자를 Bold로 해 봐. 그러면 더 잘 보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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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1.10.15 11:42
황홀한 광경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Superior호반으로 가을여행을 다녀오신 김승자 님 조 박사 축하드립니다.
두분의 가을맞이 여행일기는 마치 마음속 동화 이야기를 만들면서 수채화처럼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여명을 헤치면서 솟아오르는 장대한 아침햇살, 오색 찬란한 빛갈로 물들어가는 산허리의 단풍잎들, 신비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슴에 담으시면서 기어이 친정 어머님의 자비로움을 오버랩하시고 아이들과 함께 하지못한는
아쉬움에 가이없는 어머님으로 돌아가시는 부모의 마음을!
조 박사 또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들고 흐뭇한 마음에 젖어 흡족한 마음으로
귀가 하시는 두 분의 행복한 모습은 어느 무엇보다도 아름답습니다. 두 분 내내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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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5 12:08
이사온 후 이곳에 떨어져 있으니 마음깊은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답니다.
더 슬픈 것은 제 이야기를 써놓아도 아이들이 읽을 수가 없네요.
지루한 글 읽으시고 늘처럼 자상한 댓글로 대화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축지법이 따로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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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2021.10.15 15:00
승자야 반가워. 아주 잘 지내고 있구나.
너희 부부의 가을 여행이 아주 멋져보이니 그중 행복해 보인다.
흥미있고 재미있는 가을 여행 이야기는 한참 읽었구나.ㅎㅎ
두분의 사진도 너무 행복해 보이는구나.
건강 유지 하면서 다시 만날날을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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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6 02:02
아, 은영이구나. 어디 답사여행 다녀왔어?
환절기가 오니까 형제, 친구들이 그리워지고
함께 수다를 떨고 싶어서 쓰다보니 긴 글이 됐는데
글씨가 적게 나와서 읽기도 힘들었겠어.
늘 건강미 넘치는 너의 모습이 든든하고 나는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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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2021.10.16 06:48
어제는 못 들었더던 것 같은데 오늘은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이 나오네요. 음악 올리는 데도 성공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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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1.10.16 09:15
아니요, 제가 올린것이 아니고 이태영님께서 올려 주셨어요.
지난번에 가르쳐 주신대로 시도했더니 원하는 곡이 끝나자 연이어
우리 music library에 있는 곡들이 계속해서 중단시켰습니다.
며칠전에 우리 컴퓨터가 hacking을 당하는 변고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차제에 10년 쓴 컴퓨터를 폐기시키고 새것으로 바꾸었지요.
모든것이 서툴러서 손에 익게 될때까지 음악 올리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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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선
2021.10.16 17:40
아 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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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고, 가슴을 열고 호수와 산속에 묻혀서 쉬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곁에서 도와주어서 아무 일 없이 처리하고
전화위복이거니 하면서 새 컴퓨터앞에 앉아서 더듬 더듬합니다만
아직은 배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벗들을 그리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