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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아펜젤러에 하사한 ‘나전흑칠삼층장’,

130년 만에 고국 돌아왔다.

최근 아펜젤러 증손녀가 배재학당박물관에 기증

허윤희 기자/ 조선일보

 

13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나전흑칠삼층장. 높이 180.3cm, 가로 114.9cm, 세로 54.6cm. 검은 옻칠 바탕에 전복 껍데기의 영롱한 빛깔이 어우러진 19세기 말 조선 나전칠기 공예의 최고급 명품이다. 13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나전흑칠삼층장. 높이 180.3cm, 가로 114.9cm, 세로 54.6cm. 검은 옻칠 바탕에 전복 껍데기의 영롱한 빛깔이 어우러진 19세기 말 조선 나전칠기 공예의 최고급 명품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헨리 아펜젤러의 증손녀입니다. 조선의 왕이 우리 증조할아버지에게 선물해 귀한 가보로 내려오는 장롱을 한국에 기증하고 싶어요.” 지난해 9월 20일 서울 정동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담당 학예사 앞으로 이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발신자는 미국 델라웨어에 사는 여성 다이앤 크롬(66). 아펜젤러의 후손이라고 밝힌 그는 “어릴 때부터 늘 거실에 놓여 있어 스케치북에 그렸고, 친구들이 올 때마다 한국에서 온 선물이라고 자랑했던 가구지만, 우리 가족이 간직할 때보다 한국에 있을 때 더 빛이 날 것 같다”며 “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아펜젤러의 정신을 기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증 의사를 전했다. 고종이 미국인 선교사로 한국에 첫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Appenzeller·1858~1902)에게 하사한 ‘나전흑칠삼층장(螺鈿黑漆三層欌)’이 130여 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관장 김종헌)은 “한국 근대 교육에 헌신한 데 대한 감사 의미로 고종이 아펜젤러에게 선물한 삼층장을 지난 연말 아펜젤러의 증손녀 크롬 여사에게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삼층장은 아펜젤러의 둘째 딸인 아이다 아펜젤러가 보관하다가 그의 아들인 커티스 크롬을 거쳐 다시 그의 딸에게 전해졌다. 델라웨어에 있는 박물관에서 일한다는 크롬 여사는 “유물의 보존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온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고, 앞으로도 100년 이상 보존하려면 보수가 필요할 것 같아 한국의 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1960년대 중반 다이앤 크롬 여사가 어린 시절 나전흑칠삼층장이 놓인 거실에서 찍은 사진. /배재학당역사박물관 1960년대 중반 다이앤 크롬 여사가 어린 시절 나전흑칠삼층장이 놓인 거실에서 찍은 사진.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다이앤 크롬(가운데) 여사가 나전흑칠삼층장 앞에서 아들(오른쪽),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다이앤 크롬(가운데) 여사가 나전흑칠삼층장 앞에서 아들(오른쪽),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구한말 왕실과 선교사 관계 알 수 있어 나전흑칠삼층장은 높이 180.3㎝, 가로 114.9㎝, 세로 54.6㎝. 검은 옻칠 바탕에 전복 껍데기(나전)의 영롱한 빛깔이 어우러진 19세기 말 조선 나전칠기 공예의 최고급 명품이다. 나전으로 수복(壽福) 문자, 산수 인물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영지, 나비와 꽃 등을 정교하게 장식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지난 연말 유물이 도착한 후 공예사·민속·해외교류사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평가위원회를 열었다. 삼층장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나전의 전통 양식과 근대적 양식이 절충된 작품으로 소장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공호 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현재 국내외에 전하는 조선 시대 나전칠기 유물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희소성과 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며 “소재는 조선 말기의 것인데, 길상 문자를 통해 소망을 표현하는 19세기의 특징을 함께 갖고 있고, 문양의 세부 묘사에 ‘끊음질’과 ‘주름질(줄음질)’ 기법을 함께 사용해 근대 초기의 과도기적 특징이 오롯이 담겼다”고 했다. 신탁근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장은 “높이 180㎝가 넘는 대형 3층장의 규모만 봐도 왕실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궁궐 천장이 아니면 당시 사대부 가옥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규모”라며 “19세기 말 제작한 나전칠기장으로 희소 가치가 높은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장은 “나전흑칠삼층장이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에 한 점 있지만, 국내에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며 “조선 왕실이 선교사에게 준 선물 유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로, 향후 구한말 의료·교육 선교사와 왕실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라고 했다. 차 부장은 “고종이 그동안 외국인 선교사에게 준 선물은 주로 병풍, 도자기, 금팔찌, 손거울 등인데 삼층장 같은 대형 가구를 선물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나전흑칠삼층장 정면 모습.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나전흑칠삼층장 정면 모습.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나전흑칠삼층장 여닫이문을 활짝 연 모습. 여닫이문 안쪽 면마다 원형 테두리 안에 꽃을 그린 종이를 붙였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나전흑칠삼층장 여닫이문을 활짝 연 모습. 여닫이문 안쪽 면마다 원형 테두리 안에 꽃을 그린 종이를 붙였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배재학당 세운 아펜젤러는 누구? 아펜젤러는 구한말 조선을 찾은 감리교 선교사다. 1885년 기독교 선교를 위해 아내 엘라와 제물포에 도착했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 먼저 조선에 입국한 미국 의사 겸 선교사 윌리엄 스크랜턴(1856~1922)의 집을 빌려 두 칸짜리 방 벽을 헐고 교실을 만들어 한국 학생 2명과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한국 근대 학교의 시초라는 배재학당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고종은 ‘인재를 기르는 곳’이라는 의미로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현판을 하사했다.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한글학자 주시경이 모두 1894~1895년 이 학교에서 공부한 동문이다. 김종헌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은 “이후 1895년 2월 2일 고종은 허황된 글을 없애고 실용을 택해야 한다는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를 반포했다”며 “나전흑칠삼층장은 고종과 아펜젤러의 이런 관계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최초 개신교 교회인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것도 아펜젤러였다. 아펜젤러는 구한말 조선에 대해 “멀리서 바라본 것만으로 이 나라의 풍부한 자원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어떤 선입견도 가져선 안 된다. 밖에서 보면 마치 동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은 ‘알리바바 보물의 방’과도 같다”고 일기에 기록했다.

 

한국에 첫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 /배재학당역사박물관 한국에 첫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

/배재학당역사박물관

 

한국에 와서 교육과 선교에 투신하다 조난 사고로 숨진 사연도 극적이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는 전남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 번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군산 어청도 근해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나 44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동행한 한국인 비서와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기 위해 선실로 내려갔다가 22명과 함께 사망했다고 한국교회사(1902년 8월 신학월보)는 기록하고 있다. 서울 마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그의 추모비가 있다. 그의 장남은 배재학교 교장을, 장녀는 이화학당 교장을 지내다가 한국 땅에 묻혔다. 김종헌 관장은 “아펜젤러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서양의 기독교 정신을 받아들여 동서양 문화를 융합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인물”이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은 자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미국에 돌아갈 때 그들이 갖고 있던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을 배재학당에 기부했고, 후손들은 아펜젤러에게 물려받은 유물 277점도 2008년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개관 때 기증했다. 이번에 고종이 선물한 왕실 가구까지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하반기 특별 전시를 통해 130여 년 만에 돌아온 아펜젤러의 삼층장을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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