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티투어’ 타고 떠난 서부산 근현대 시간 여행
2023.03.28 17:18
'시티투어' 타고 떠난 서부산 근현대 시간 여행 버스 타고 구불구불 산복도로 달리고… 피란수도 흔적 따라 뚜벅뚜벅 걸었다 박근희 기자/조선일보
부산이라는 도시를 꽤 안다고 생각했다. 이국의 해변을 연상케 하는 해운대와 광안리, 근사한 호텔과 대형 카페들이 수놓은 기장과 영도…. ‘부산’ 하면 푸른 바다 위 요트, 해변을 따라서 오가는 앙증맞은 모노레일부터 떠올렸다. 매일 순위를 갈아치우는 ‘핫플’은 꿰고 있었지만, 6·25전쟁 당시 부산이 1023일 동안 ‘피란 수도’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지난해 12월, 부산에 남아 있는 피란 수도의 핵심 유산 9곳(경무대, 임시 중앙청, 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 부산항 제1부두, 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 유엔묘지, 하야리아기지)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피란 수도의 중심지였던 서구 일대, 서부산 명소들을 경유하는 시티투어 노선을 타고 ‘서부산 시티투어’에 나섰다. 버스는 마치 타임머신처럼 가슴 아프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 근현대의 풍경 앞에 멈추곤 했다.
◇원도심·서부산 12 명소 잇는 시티투어
“서부산은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는 곳이에요. 가덕도가 서부산 강서구인 것도 최근에 알았다는 부산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떠들썩한 관광 명소는 적지만, 역사와 자연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서부산 힐링 코스’로 안내합니데이~.”
지난 17일 오전 9시 20분, 서부산 시티투어 버스가 출발하자 부산시티투어 가이드 한명희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승객이 드문드문 앉은 버스엔 내국인 관광객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눈에 띄었다. 한씨는 “서부산 노선은 부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중장년, 노년층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탄다”며 “‘핫플’ 코스가 많은 노선에 비해 인기가 적은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동안 해운대(레드 라인), 태종대(그린 라인), 해동용궁사(블루 라인) 방면 등 동부산과 해안선 중심으로 달렸던 시티투어 버스와 달리 ‘오렌지 라인’이라 불리는 서부산 시티투어는 산동네들을 이은 ‘산복도로’를 비롯해 부산의 옛 풍경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사하구·서구 일대를 아우르는 서부산권 특화 노선.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 2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부산역에서 출발해 순환한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첫 번째 정류장이자 우리나라 1호 공설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과 용궁구름다리가 놓인 암남공원을 지나면 감천문화마을에 도착한다. 한씨는 “‘부산의 마추픽추’라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은 오렌지 라인 12개 코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라고 소개했다. 버스는 감천사거리 정류소에 정차한다. 경사가 심하고 도로 폭은 좁아 대형 버스로는 운행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감천문화마을 입구까지는 마을버스로 갈아타거나 20~30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과 계단이 이어져 걸어가는 게 만만치는 않다. 여기저기 뒤엉킨 전깃줄, 빛바랜 간판이 서울의 해방촌을 닮았다.
◇관광 명소 된 피란민들의 산동네
옥녀봉 산 중턱을 뒤덮은 듯 자리한 감천문화마을은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정착하며 이룬 마을이다. 10여 년 전 ‘꿈꾸는 마추픽추’라는 이름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알록달록 새 옷을 갈아입고, 공공예술 작가들의 손길이 더해지며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페루의 마추픽추나 이탈리아 친퀘테레와 자주 비교되기도 하지만, 아픈 역사가 만들어낸 마을은 세계 그 어느 곳과 비교 불가한 풍경으로 맞이한다. 한두 명이 지나갈 만한 산동네 좁은 골목마다 이야기가 가득하다. “8평이 넘지 않는 집들은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고, 골목을 막지 않게 다랑이논처럼 지은 것이 특징”이라는 게 한씨의 말이다. ‘별 보러 가는 148계단’ 얘기도 재미있다. 높은 곳에 올라 별이 보이는 게 아니라 ‘계단을 오르다보면 별이 보일 정도로 힘들다’는 뜻이란다. 감천문화마을 제2안내소 옆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 조형물은 이 구역 최고의 포토존으로 꼽힌다. 조형물 너머로는 마을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과 지민의 벽화 앞에도 기념사진 촬영 줄이 길게 이어진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감천문화마을에서 탐방을 끝내기가 쉽지만, 감천문화마을 입구에서 ‘까치 고개’라 불리는 고개만 넘으면 ‘1023 피란 수도 흔적길’이 있는 아미동비석문화마을(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이다. 아미동 산19번지 일대는 구한말 형성된 일본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던 마을이다. 6·25 피란민들과 부산시내 판잣집 철거 정책 등으로 떠밀려온 사람들이 묘지의 비석을 주춧돌 등으로 삼아 집을 지었다 해서 ‘비석마을’이라 불린다. 앞뒤 가릴 것도 없던 시절에 오직 살기 위해 비석을 받쳐 지은 집들은 피란 수도 부산의 유산이 됐다.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는 손정미 문화관광해설사는 “어떤 이는 ‘공동묘지에 지은 집’이라 쉽게 말하기도 하고 괴담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이곳 동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무섭다는 생각을 어데 하노? 그 시절엔 사람에 떠밀려 등 눕힐 수 있는 땅 한 평 없는 게 제일 무서웠제~’라고 하더라”며 “‘우야든 같이 살아야 하니까 비좁아도 땡겨주고 또 땡겨주며 살았다’는 어르신들 증언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실제로 마을 계단이나 바닥, 집의 축대와 담장 등은 비석을 품고 있다. 억척스러웠던 당시 피란민들의 생활사는 골목 안쪽 두세 평 남짓 좁은 쪽방 등을 고쳐 피란 후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피란생활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시절 가상의 인물인 ‘석이’ ‘미아’의 방을 비롯해 구멍가게, 봉제 공장 등으로 꾸민 박물관을 관람하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아미비석문화마을안내센터’가 나온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였던 고(故) 최민식 선생의 작품을 전시한 ‘최민식 갤러리’도 꼭 들러볼 일이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라는 주제로 1960~90년대 흑백 사진들이 기다린다. 헐벗은 차림으로 엄마 젖을 빨고 있는 아이, 동생을 둘러업은 소녀, 외팔로 신문을 파는 청년 등 그 시절의 초상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1023일 피란 수도’ 흔적 따라가기
피란 수도 흔적길은 위쪽으로 ‘천마산 산복마을 흔적길’, 아래쪽으로는 ‘임시수도 탐방길’과 연결된다.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걸어가 볼 만한 거리지만, 이왕 시티투어 티켓을 끊었으니 시간 맞춰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승하차 지점인 감천사거리 정류장으로 간다.
피란 수도 부산 이야기는 부민동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석당박물관은 1959년 11월에 개관한 부산 최초의 박물관이다. 국보로 지정된 ‘심지백 개국원종공신녹권’과 ‘동궐도’, 몰운대와 태종대 등을 그린 보물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 등 유물 2만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유물뿐 아니라 1925년 경남도청으로 지어진 박물관 건물은 임시 수도 정부청사(임시 중앙청)로 활용됐다. 한쪽엔 복원 공사를 하며 나온 주요 건축 잔해들도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해두었다. 석당박물관을 나서면 지난 2월 서구청에서 새로 조성해놓은 ‘1023 피란 수도 세계유산 탐방길(임시 수도 탐방길)’이 기다린다. 임시 수도 당시 대통령 관저로 쓰인 임시 수도기념관(경무대) 가는 길 사거리 길목엔 전차가 볼거리다. 골목길 안쪽엔 참전국 기념비, 벽화 등이 피란 수도 당시를 알린다. 부산의 원도심 어디에서나 흔히 마주치는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면 빨간 벽돌의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가 나온다. 뒤편 전시관에선 피란민들의 판잣집부터 국제시장, 천막 학교 등을 드라마 세트장처럼 재현해놓았다. 피란민의 손에서 탄생해 부산 대표 음식이 된 밀면 이야기까지 부산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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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2023.03.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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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호
2023.03.28 22:05
태영이, 난 자네가 시티투어 타고 부산 구경을 하고 온 줄 알았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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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자
2023.03.29 10:55
부산이 각가지 모양새로 관광객을 환영하려고 노력하는군요.
1953년도에 사대부중에 입학했던 용두동 천막교사 산동네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여름에는 송도해수욕장으로 옥수수, 참외간식을 싸가지고
우리 칠남매를 데리고 여가를 즐기셨던 우리 부모님들,
도리켜보니 겨우 사십전의 젊은 부모였는데, 감탄, 감동합니다.
싱싱한 전복, 해삼, 생굴, 그리고 붉은 통수박-
이선생님의 부산소개로 추억의 70년전 부산을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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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2023.03.29 22:09
감천문화마을은 10여년 전에 가족여행으로 아이들과 부산 갔을때 관광코스에
있어서 하루종일 점심도 먹고 사진 찍으면서 감천마을에서 즐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훨씬 더 예쁘게 단장되어 있네요. 젊었으면 또 한번 가보고 싶을만큼 구석구석
재미있는 곳이 많군요.
6.25 무렵에는 초등학교를 3년을 부산토성국민학교를 다녀서 전쟁도 모르고
피난민들만 우리집으로 몰려와서 함께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산이 저의 제2고향이기도 하네요. 오래사니까 제2고향도 많아요.
대구, 부산, 제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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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영
2023.04.01 10:43
부산에 한번도 가본적없다가 미국살이 30년쯤 지나 남편의 직장일로
부산에서 5년 살고 2000년도에 미국으로 돌아 왔어요.
그동안 IMF도 있었고 힘든시기 였다지만 나에게는 봄부터 경북, 경남 곳곳을 다니며
명소를 탐방했던 즐거운 추억만 생각납니다.
4월 첫주말에 진해군항제 벚꽃놀이를 시작해서, 동백섬은 갈때마다 걸어서 한바퀴 돌고,
지금쯤 진달래 만발한 금정산, 김밥 두줄 싸갖고 걸어서 산행, 유채꽃 만발한 을숙도도 걸어서 돌고,
양산 통도사, 경주 봄축제, 지리산, 진주, 울산, 설악산, 등등 ...
고속뻐쓰가 펼쳐있어 하루 여행도 가능했고, 50대 중 후반, 그때 많이 걸어서인지 아직도 두발로 잘 걷습니다.
금정산 밑에 새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그때는 부산에 지하철이 1 Line 뿐이라 낮에 남편이 일할때
전철타고 나혼자 어디던지 다녔어요. 젊은이들 북적이는 광복동도 거닐었고
해운대 달맞이 고개 Live Cafe에 가서 가수들 (전용록, 원미연 등등) 노래도 듣고...
광안리 모래사장에서 우뚝 우뚝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다리 기둥들이 흉칙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며
미국에 있는 애들이 (3) 보고 싶어 울기도 했지요.
자갈치시장에서 펄펄뛰는 생선회, 즉석에서 끓여주는 매운탕, 지금도 잊지못할 추억, 20여년전 입니다.
진해군항제, 뒤에 거북선 모형을 구경하고 해군병사와 함께
유채꽃 만발한 부산 남단에 을숙도. 바닷바람 맞으며 한바퀴 돌았지요.
금정산 내려오면서 바위틈의 물 한바가지 마십니다.
금정산의 유명한 절, 범어사 입구입니다.
주말이면 북적 북적, 입장료도 받습니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데 ...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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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저의 제2고향이라고 생각 하면서 갈때마다 아직 가슴이 뭉클하는 곳입니다.
하꼬방 피난살이 하다 대청동 방송국 산 전체가 불이나 그나마 잘곳마져
잃어버려 고생한적이 있습니다.
부산에 갔을때 피난갔던 달동네의 흔적을 남긴 마을를 올려다 보면서 지나간적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방문해서 피난시절의 흔적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