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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서울에도 수정궁과 에펠탑이 있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일러스트=이철원

 

근대 시민사회를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건축물이 두 개 있다. 런던의 수정궁과 파리의 에펠탑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구조가 농업에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으로 변화되었다. 다양한 제품이 새롭게 만들어졌고, 이 물건들을 소개할 장소가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엑스포다.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첫 박람회가 열렸다. 이때 제품을 야외에 전시할 수 없다 보니 철과 유리로 대형 실내 건축물을 만들었다. 조셉 팩스턴이 설계한 햇빛이 잘 드는 이 건물을 사람들은 수정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궁전이라고 해서 ‘수정궁’이라고 불렀다. 길이 564m의 거대한 실내 공간은 건설에 1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거대한 유리 온실 같은 수정궁에는 나무도 심기고 분수도 있어서 실내 공간이 아닌 야외 공간이라는 착각을 일으켰다.

 

엑스포 주최 측은 수정궁에 사람이 많이 모이면 폭동이 일어날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사람들은 전시된 물건들과 신기한 공간을 보고 즐기기에 바빴다. 설혜심 교수의 저서 ‘소비의 역사’는 수정궁은 새로운 ‘소비자’라는 계층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귀족과 천민으로 나뉘던 계급사회였다면 근대사회에는 소비자 계급이 탄생했다. 산업혁명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자 새롭게 만들어진 계층이다. 우리는 쇼핑할 때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는 왕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은 소비를 하면 귀족이 될 수 있는 사회다. 현대인은 돈을 벌어서 소비를 하고 싶어 한다. 소비하는 순간만큼은 계급 상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정궁은 전통적 계급사회를 해체하고 시민사회를 완성시키는 공간이었다. 이는 기존에는 없었던 햇빛이 들어오는 거대한 실내 공간을 만들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극받은 프랑스는 1889년 파리 엑스포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서 324m 높이의 에펠탑을 건설하였다. 그렇게 높은 건축물이 가능했던 것은 철이라는 재료와 더불어 엘리베이터가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300m나 되는 탑을 아무도 걸어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리에서 가장 높은 에펠탑 전망대로 올라갔다. 보통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은 권력자의 시점이다. 높이 올라가면 나를 노출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보의 불균형은 권력을 만든다. 그래서 펜트하우스가 비싼 것이다. 높이 올라가면 더 멀리 더 넓은 공간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시각적으로 더 많은 공간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높은 건물들은 권력자의 전유물이었다. 과거에는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엄청난 양의 돌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귀스타브 에펠은 최소한의 철을 이용해 빠르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완성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공장에서 1만8038개의 철제 부재와 250여만 개의 리벳을 대량생산하고 현장에서 빠르게 조립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시민들이 쉽게 올라가서 파리를 내려다보는 최고 권력자의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 사회에서 최고 권력자는 일반 시민이라는 것을 공간적으로 완성한 건축물이 에펠탑이다.

 

이처럼 수정궁과 에펠탑은 시민사회를 완성한 건축물이다. 빠르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흥미롭게도 수정궁과 에펠탑이 한곳에 지어져 있다. 바로 잠실 롯데월드 단지다. 1989년에 완성된 롯데월드는 수정궁같이 자연 채광이 되는 거대한 실내 공간 안에 위락 시설을 갖추었다. 사람들은 야외 공간 같은 실내 공간에서 소비자가 된다. 2016년에는 롯데월드타워가 완성되었다. 높이 555m의 월드타워는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남산 높이까지 포함해서 479m인 서울남산타워보다도 높다. 이제는 북한산을 등산하지 않고도 롯데월드타워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편하게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의 어떤 펜트하우스보다도 높은 이곳 전망대에서 일반 시민은 최고 권력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다.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는 대한민국의 수정궁과 에펠탑이라 할 수 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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