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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1951년, 대한민국은 사이판으로 ‘이전’할 뻔했다.

미 극동군사령부 작전계획 CINCFE 4-51

 

유석재 기자 < 조선일보 >

 

화면 캡처 2022-06-03 202139 02.png

사이판 음식 한 곳에… 내달 18일부터 마리아나 미식축제

 

남태평양 사이판에서 다음달 마리아나 미식 축제 등의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가 끝이 보이는 듯한 상황에 접어들면서,

남태평양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사이판도

이제 예전 같은 영화를 누리려 하는 것 같군요.

이제 여름 휴가철을 맞아 모처럼 사이판 같은 해외 휴양지를 다시 찾으려는

한국인도 생겨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사이판 관광과는 무관합니다.

지금은 무척 평화로워 보이는 그 섬에 우리 입장에선 그야말로 기막히고

불편한 역사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태평양전쟁 중인 1944년 미군과 일본군 사이의

‘사이판 전투’에서 희생된 한국인을 위해

‘태평양 한국인 추념평화탑’이 세워져 있죠.

 

그런데 사이판을 생각하며 ‘기가 막히다’고 하는 이유는 그뿐이 아닙니다.

1950년대 초에 대한민국이 통째로 이곳으로 ‘이사’를 갈 뻔했다는 얘깁니다.

 

도대체 무슨 얘긴지 하나하나 짚어보겠습지니다.

1950년 6·25 사변이 일어난 뒤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지만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유엔군과 함께 압록강까지 북진했습니다.

그러나 10월이 되자 중공군 참전으로 전황이 다시 불리해졌죠.

 

화면 캡처 2022-06-03 202330 0.png

6.25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지낸 매튜 리지웨이(1895~1993).

 

12월 말, 미8군 사령관 매튜 리지웨이는 중공군을 방어하기 위한

6단계의 방어선을 확정했습니다.

제1방어선(38도선): 임진강 하구에서 양양에 이르는 주저항선.

제2방어선: 수원-양평-홍천-주문진을 잇는 선.

제3방어선: 평택-안성-원주-삼척을 잇는 선.

제4방어선(금강선): 금강 남안과 소백산맥을 잇는 선.

제5방어선(소백산맥선): 산맥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낙동강 방어선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선.

제6방어선(낙동강 방어선): 유엔군이 최대한의 저항을 시도할 진지.

 

자, 그럼 제6방어선까지 무너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유엔군은 일본으로, 국군은 연안 도서로 철수시킬 계획이었습니다.

1951년 1월 11일 미국 정부는 이 같은 철수 계획을 세운

국가안전보장회의 문서(NSC100)를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연안 도서’라는 것은 제주도 또는 당시는 일본 영토가 아니었던

오키나와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제주도로 이전한 대한민국 정부’는 대만으로 철수한

장제스 정부와 같은 운명이 될 수 있다는 우울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 우울한 계획은 다행히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엔군은 더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소련과 전면전을 벌임으로써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경우였습니다.

최근 이상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 노포크 맥아더 아카이브의 방대한 극동군사령부 문서철을 열람한 끝에

1951년 4월 3일 작성된 미국 극동군사령부 작전계획 CINCFE 4-51을 찾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학술지 ‘군사’ 101호에 논문

‘한국전쟁기 미국의 한국정부 해외 이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작전계획 CINCFE 4-51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화면 캡처 2022-06-03 202500 0.png

사이판 해변. / 마리아나관광청

 

-대한민국 정부와 선별된 포로를 사이판(Saipan)과 티니언(Tinian)에 이송한다.

-이송해야 할 인사들의 범주는 다음과 같다.

A급: 중앙공무원, 군대, 경찰(총인원 30만543명).

B급: 종교 및 전문직 지도자(총인원 18만2000명).

선별된 포로 1만명. 총원: 약 50만명.

 

이게 무슨 얘길까요. 정리하자면 ‘1·4 후퇴 직후

국군과 연합군의 전황이 불리해지자,

미국이 한국 정부를 사이판이나 티니안 등으로 이전할 것을 검토했다’는 얘깁니다.

당시 사이판·티니안과 함께 거론된 이전 후보지로는

서사모아, 팔라우, 괌, 뉴기니 등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이 남태평양의 섬나라가 될 뻔했던 셈이죠.

나라라기보다는 멸망한 나라의 임시정부라는 편이 맞겠지만 말입니다.

사이판(115㎢)과 티니언(101㎢)의 면적은

각각 현재 대한민국 면적(10만401㎢)의 0.1% 수준입니다.

 

하지만 미 육군부는 인원이 너무 많고

한반도에서 너무 멀다는 점을 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다른 후보지 역시 마찬가지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사바이(Savaii)·유폴루(Upolu)를 포함한 서사모아(WesternSamoa),

팔라우(Palau), 야프(Yap), 포나페 열도(Ponape Islands), 괌(Guam),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 등은 피란민을 수용할 수 있으나 거리가 문제다.

 

-역시 같은 문제로 인해 미국 본토와 하와이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소개(疏開)될 인원과 장비는

미국의 수송 능력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고,

한국군은 아시아 연안에서 공산 진영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다수의 군대를 보유한 한국 정부도 외국으로 이전하지 말고

제주도로 이전을 계획해야 한다.

 

-다만 민간인 피란지로는 (1)서사모아 (2)팔루우,

야프, 포나페 열도 (3)영국령 뉴기니아(파푸아뉴기니) 등을 추천할 수 있다.

 

이후 전선이 38선 부근 고지전으로 바뀌면서

정부 이전의 실현 가능성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미 합동참모본부는

1952년 1월에도 예비 연구를 통해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경우

한국 정부의 철수 지역으로

일본·대만·류큐는 인종적 차이 때문에 적절하지 않고,

역시 사이판과 티니언이 선택 가능한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해외 이전 계획은 미국이 소련과 전면전을 예상하면서

동북아 방면의 반격을 준비하는 거대한 작전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하지만,

만약 이 계획이 실행됐더라면

우리 모두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태어나 자랄 수도 있었다는 얘깁니다.

아니면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거나.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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