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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부먹’이나 ‘찍먹’ 둘 중에 골라야 하나

성리학 정통 밝히는 문묘종사

백성들 삶과는 관계없는데 250여 년간 지독히도 싸워

지금 정치 싸움은 다른가

이한수 문화부장/조선일보

 

서울 성균관대학교에 있는 성균관의 문묘 대성전 /문화재청

 

지금 시선으로 과거 조선 시대를 보면 허망한 정치 싸움이 여럿이다. 뭐 그리 중하다고 목숨 걸고 싸웠는지 먼 미래 사는 후손이 보기엔 한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당대 논리 속에선 리(理)가 우선인지 기(氣)가 바탕인지, 임금 어머니 1년상이 맞는지 3년상이 옳은지 같은 주제는 목숨 열 개라도 바칠 중대한 문제였다. 정치권력을 잡느냐 놓치느냐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인터넷에 퍼진 우스개 글이 있다. 조선 시대 당쟁을 탕수육 먹는 법에 빗대 쓴 글이다. 중국 음식 탕수육이 조선에 들어오자 논쟁이 벌어졌다. 소스를 부어 먹어야 한다는 ‘부먹파’ 동인(東人)과 찍어 먹어야 한다는 ‘찍먹파’ 서인(西人)이 다툼을 벌였다. 동인은 둘로 나뉘었다. 소스를 붓더라도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남인(南人)과 양해는 무슨, 그냥 부으면 된다는 북인(北人)이다. 서인도 분열을 피하지 못했다. 소스에 여러 번 찍어 먹는 게 좋다는 소론(少論)과 여러 번 찍으면 부어 먹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노론(老論)이다. 원칙론자 노론은 다른 방식으로 먹는 자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했다. 이후에도 소스에 찍고 나서 간장 찍으면 어떠냐는 시파(時派), 소스에 찍으면 됐지 간장은 왜 찍느냐는 벽파(僻派)로 분열을 거듭했다. 헛웃음이 나오는 우스갯소리지만 깊은 통찰이 담겨있다. 당시 목숨 걸고 싸웠던 당쟁이 고작 탕수육 먹는 방법 놓고 다툰 것처럼 하찮은 일 아니었느냐는 인식이다.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문묘종사(文廟從祀) 논쟁도 온 일 제쳐놓고서라도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임금의 왕위 계승 정통을 밝히는 종묘(宗廟)보다 성리학 정통을 높이는 문묘(文廟)가 당대 정치인에겐 더 중요했다. 우리 당(黨) 스승 위패를 문묘에 모셔 공자로부터 이어진 이른바 도통(道統)을 계승해야 했다. 죽은 자의 권위를 높여 산 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래야 고관대작부터 미관말직까지 우리 편에게 ‘떡 고물’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서인의 스승 율곡 이이(1536~1584) 위패는 인조반정 직후인 1623년부터 숙종 7년인 1681년까지 58년 논쟁 끝에 문묘에 모셔졌다가 남인의 반격으로 8년여 만에 쫓겨났고, 5년 후 다시 문묘에 종사되는 곡절을 겪었다. 온 나라가 들끓었다. 중앙 관료부터 함경도 유생에 이르기까지 글 좀 안다는 이들이 모두 말을 보탰다. 편을 나누고 세력 모으기에 휘발성이 큰 주제였다. 같은 하늘 이고 살 수 없다는 듯 서로에게 극단의 언어를 구사했다. 이 싸움에 끼지 않으면 당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을 터였다. 백성들 살림살이와 무슨 관계 있나 같은 말은 “나이브(순진)하다”는 비난 들을 일이었다.

 

참 지독한 싸움이었다. 문묘종사 논쟁은 19세기 말 고종 20년인 1883년에도 벌어졌다. 300년 전 인물인 조헌(1544~1592)과 김집(1574~1656) 위패가 논란 끝에 문묘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급한 일이었나? 중국에서 아편전쟁이 벌어지고 일본에 흑선(黑船) 온 지 30년 이상 지난 때였다. 세계 정세보다 문묘종사가 더 중대한 문제였나?

 

지금 정치 싸움은 과연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절실한 주제를 놓고 벌이는 것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미·중이 대립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고, 북이 미사일 쏘아대는 때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관심 모으고 능력 키우기보다 제 세력 결집하는 21세기 문묘종사 운동을 벌이는 건 아닌가? 훗날 먼 미래 후손이 지금 시대를 한심하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불행한 일은 예나 지금이나 ‘부먹’도 ‘찍먹’도 아닌 입장은 양쪽에서 다 배척받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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