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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와 아이젠하워

2023.09.16 14:08

최종봉 조회 수:52


** 맥아더와 아이제하워~♡

 

맥아더는 태평양에서 승리한 장군이고, 아이젠하워는 유럽지역
에서 승리한 장군이다. 
둘 다 별을 다섯개 단 원수들이었다. 
그런데 이 둘은 대조적인 면이 있고 우리 인생에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맥아더는 미 육사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사람이었다. 
뛰어난 성적과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진급도 빨리하고 늘 최고의 군인이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좀 달랐다. 
그도 결국은 별 다섯개 단 원수이고, 나중에 미국의 34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8년 동안 미국 대통령까지 지냈으나 그의 군 경력은 맥아더와 전혀 달랐다. 

맥아더가 천재군인 이였다면 아이젠하워는 별명이 석두(돌대가리) 아이젠하워였다. 아이젠하워는 소령만 16년(만14년)을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중령도 5년을 했다. 그가 대령이 된 것이 51세의 나이였던 1941년 이었다. 그는 소령시절에 스스로, 나는 대령만 달고 제대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 사람이다. 
남들 같이 진급하지도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석두 아이젠하워라고 불렸다.  소령, 중령만 20년이나 하다니 얼마나 못나 보였을까? 그러나 그는 
이 기간에 중책보다는 좀 한가한 직에서 지내면서 결코 허송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군대에서 필요한 교육과정 이라고는 모조리 받고 나서도 여기저기 배우러 다니고 대학원, 국방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피나게 실무에 필요한 것을 
철저히 공부해 나갔다. 
그래서 오랜 기간 빛을 못보고 석두라고 불렸지만, 그 동안의 공부로 그는 
많은 뛰어난 실무 실력을 갖추어 두었다. 
즉 속으로는 자신감이 넘치도록 내공을 
남몰래 쌓았던 것이다. 

거기에다 맥아더보다 사람을 끄는 묘한 친화력이 더 있었다. 
그러던 중 유럽에서 진행 중인 2차대전 전쟁에서 유럽 탈환작전을 어떻게 펴야 될지 고심하던 당시 참모총장이던 마샬 장군
(나중에 원수가 됨)에게 작전을 건의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 아이젠하워가 보여준 작전이 너무 훌륭했다. 
즉 아프리카에서 먼저 미군 영국군이 연합작전으로 독일 전차군단을 몰아내고, 그 여세로 이태리 시칠리 섬을 경유 이태리를 탈환하고, 서쪽은 연합
군이 합동으로 극비리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전광화석처럼 감행 한다는 요지였다. 
마샬은 아이젠하워의 작전을 작전회의에서 다시 발표시키려고 했는데, 
이 사람을 작전회의에 참석시키자니 중령으로는 계급이 너무 낮아서 계급을 대령으로 달고 작전회의에 참석시켰다. 
그의 작전은 역시 훌룡했다. 그리고 당시에 유럽전을 위해 맥아더를 보내면 좋겠는데, 맥아더가 유럽에 가면 태평양 전쟁에 공백이 생겨 또 위험해지니 맥아더를 태평양 전쟁
에서 뺄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젠하워를 유럽으로 보내기로 했는데, 연합군이니 다른나라 장군들 틈에서 계급이 낮으면 발언권이 안생겼다. 그래서 계급을 준장으로 높여서 보내고, 그 이후 유럽의 전쟁에서 그는 맹활약을 하며 진급했다. 그래서 불과 3년여 만에 대령에서 원수(별다섯)로 다섯 단계를 초고속 진급하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진급 기록을 세웠다. 
소령 중령만 20년 달던 사람이 단기간에  원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까지 된 것이다. 

남들이 석두라고 불렀고, 스스로 대령만 되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다던 아이젠하워였지만, 
그 괄시받고 한가한 자리에 있을 때 꾸준히 공부하고 배우고 노력했던 덕에 그때 쌓은 실력으로 결국 최단 시일 진급기록을 세우며 대영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지상 최대의 작전" 이름이 붙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극심한 폭우를 무릅쓰고 감행함으로써 독일의 허점을 보기 좋게 찔렀고 대성공을 거둔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다. 맥아더 같은 사람만이 성공 하는 게 아니다. 아이젠하워같이 석두로 불리우고 가장 무능해 보이던 사람도 노력으로 얼마든지 성공할수 있음을 아이크(아이젠하워)는 잘 보여주었다. 

 

● 경력만 놓고 본다면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아이젠하워가 아니라 당연히 더글러스 맥아더였어야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둘의 2차대전 전후의 행적을 들여다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아이젠하워는 30년대 후반 필리핀의 맥아더 사령부에서 참모 역할을 유능하게 수행했지만, 부하들을 키우기 보다는 공을 빼앗기 일쑤였던 맥아더와 결별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와 참모총장 마셜 휘하에서 서서히 그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고 미영연합군의 총사령관자리에 고작 장군이 된지 2년도 채 안된 아이젠하워가 발탁된 이유는, 평소 그가 남의 
말에 잘 귀울이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업무를 유연하고 매끄럽게 처리하는 조정능력이 탁월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늘상 전공을 다투고 상호간의 알력이 심했던 연합군 총사령부를 다독이면서 훌륭하게 총사령관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그는 휘하 장군들의 능력을 키워주고 격려했으며 자신보다는 늘상 부하들의 전공을 먼저 추겨 세울 줄 아는 진정한 리더였다. 아이젠하워의 주요 핵심 참모들이 대부분 영국군 장성들이었다는 점은 그가 얼마나 연합군전체의 협력관계를 중요시하고 상대를 우선 배려했는지 보여준다. 
그의 휘하에 몽고메리, 패튼, 브래들리라는 야전의 명장들이 나왔던 이유도 거기 있다. 
그는 실전에서 작전지휘를 하지는 않았지만,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특유의 결단력으로 작전을 강행시켜 추진력을 보여줬고, 희생이 많을게 뻔한 베를린 점령을 소련군에게 맡겨서 이미 다 이긴 전쟁에서 더 이상 자국의 젊은이들이 무의미하게 희생되는 것을 막은 진정한 전략가였다.

맥아더였다면 베를린 점령같은 폼나는 일은 절대로 자기가 하려고 했을 것이다. 
불과 3년만에 아이젠하워가 오성장군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리 전시라지만, 그가 얼마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는지를 그대로 증명해 준다. 
육군 20개 사단의 가치와 맞먹는다는 그의 미소와 낙관주의는 리더가 갖춰야 할 진정한 모습을 대변하는 상징이었고 그의 애칭 아이크는 모두가 그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면 맥아더는 너무도 탁월한 엘리트로써, 그는 주위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스타일이었고, 부하들을 키우기 보다는 사소한 부하들의 전공을 가로채서 자신의 업적인 양 선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곤 했다. 
맥아더 휘하에서 별 볼일 없던 아이젠하워가 유럽전선에서 승승장구했던 걸 보면 쉽게 알수 있다. 요컨대 그는 휘하장군 들을 키울 줄 몰랐다. 
자기가 늘 주인공이어야 했으니까. 태평양 전쟁 내내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온 진정한 전쟁 영웅은 그가 아니라, 해군의 니미츠 제독이었다. 

니미츠와 맥아더의 갈등은 신사중의 신사였던 니미츠가 전체의 조화를 위해서 많은 부분을 참고 
또 참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심각한 내부 분란거리가 될 소지가 매우 충분했었다. 
결국 맥아더가 전쟁 중 수행했던 작전들은 태평양전선 전체에서 보조적 측면에 그쳤다. 
그는 전쟁 내내 중부태평양을 가로지르면서 진격한 미 해군과 해병대가 감수해야 했던 희생이 막대하다고 니미츠를 비난했지만, 막상 필리핀 탈환작전에서의 미군의 희생은 그보다 더 극심했고, 사실상 전쟁의 흐름과도 무관했다. 
막말로 맥아더의 멋진 귀환 쇼를 위해서 필리핀에서 미군이 흘린 피는 너무도 많았다. 

맥아더는 그 자신의 정치적 이해가 늘상 실제 전략전술보다 앞서면서 스스로를 그르치기 일쑤였다. 
맥아더는 우수한 군인이기는 했으나, 
그를 이제 위대한 야전사령관이라고 평가하는 역사가는 거의 없다. 
그는 화려한 이미지 포장술과 언론 플레이로 자신의 공적을 과장한 것이 이제는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며, 특히 혼자서 모든 걸 관장했던 한국전쟁에서의 실책은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리더십을 갖추고 타인을 포용할 줄 알았던 아이젠하워와, 똑똑하긴 했으나 남을 무시하고 군림하기 좋아했던 맥아더는 결국 정치무대에서도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여준다. 

 

●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한국전쟁의 종전을 내세웠던 아이젠하워가 3차 대전을 일으킬 뻔한 위험스러운 엘리트 맥아더 대신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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