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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떨어진 지폐… ‘결혼’ 위한 미끼였다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운명의 남자 선발 오디션 눈물겨운 사랑의 쟁탈전

김동식 소설가   

 

정말 이상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길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줍게 되면서입니다.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흘려놓은 돈이었죠.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저와 결혼할 운명의 남자를 구해요.’ 장난 같아 보였지만, 진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핸드폰에 저장해 보니 카톡 프로필에 뜬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더군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연락했고, 그녀의 대답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 맞아요. 저와 결혼할 운명의 남자를 구하고 있어요. 이 넓은 세상에서 그 돈을 주울 운명이라면 첫 번째 자격은 충분히 갖추신 거죠.” 이 여자 뭐지? 저는 강렬한 호기심에 빠져들었습니다. 서로의 이름과 나이 등을 묻는 간단한 대화가 오간 뒤, 그러면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대답에 저는 벙쪘습니다. “아 잠시만요. 만 원짜리 주우셨다고 했죠? 오만 원짜리 주운 분께 지금 연락이 와서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일러스트=한상엽

 

알고 보니 그녀는 총 4장의 돈을 뿌려놓았더군요. 천 원, 오천 원, 만 원, 오만 원. 이유요? 배우자의 금전운도 중요한 요소라고, 돈을 주운 사람이 지닌 행운의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랍니다.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넷 중 2등이니까 기뻐해야 할지 어떨지 원. 이 대목에서 차단해 버려도 좋았겠지만, 호기심이 더 강했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아름다워서였죠. 근데 돈을 주운 남자 모두 제 생각과 같았던 모양입니다. 영상 통화까지 하면서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우리 넷과 동시에 만날 날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딱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선물을 가져와 주세요.”

 

남자들을 경쟁시켜 평가하겠다는, 얼마나 오만한 발언입니까? 그렇지만 저는 어느새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들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뭘까? 어떤 선물을 사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녀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핑계로 힌트를 얻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몹시 딱딱해서 실패했고, 결국 그냥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중고로 구매했습니다. 책값은 만 원이 안 되지만, 그 안에 든 깨달음은 온 세상만큼의 가치가 있으니 말입니다. 좋아하는 부분에 책갈피까지 꽂아가며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현장에 나타난 다른 남자들의 물건에서도 고심의 흔적이 느껴지더군요.

 

오만 원을 주운 남자는 명품 브랜드의 립스틱을 하나 사 왔습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명품이 이것이었습니다. 당신을 위해 최고로 고급인 걸 사주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그에게 유리한 승부였죠. 근데 오천 원짜리를 주운 남자가 로또를 사 왔더군요. “이 로또는 아직 가치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명품 수백 개도 살 가능성이 있죠. 여기서 제가 가장 젊은 거 아시죠?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천 원짜리를 주운 남자가 가져온 선물은 얇은 종이 쪼가리와 ‘포천쿠키’였습니다. “운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물이 이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떤 운명도 극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저도 책을 건네면서 나름 서사를 설명했지만, 다들 참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과연 어떤 선물을 1등으로 칠지 긴장했죠.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책을 고르셨군요? 종이는 나무로 만드니까 목(木)의 기운을 타고나셨다고 봐야겠네요. 빨간 립스틱은 화(火)의 기운, 로또는 금(金)의 기운으로 볼 수 있을 거고. 포천쿠키는 음, 색깔로 보자면 토(土)가 되려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선물의 의미가 아니라, 그걸 고른 무의식적 기운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며칠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제가 바보였던 겁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쏘아붙여 버렸습니다. “아니,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습니까? 직접 보고 경험하고 느껴야지, 근거 없는 것들로 판단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입니까?”

 

그녀는 불쾌한 얼굴로 저를 노려보았지만, 쫓아내지는 않았습니다. 목의 기운이 자기와 잘 맞아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더니 모두에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할게요 그럼. 이 동전을 열 번 튕겨서 앞면과 뒷면이 나온 횟수를 기록해주세요.” 여기서도 그녀는 또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중에 하나를 고르게 하더군요. 저는 아무렇게나 고른 백 원짜리를 대충 튕겼고 앞면 삼, 뒷면 칠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모두의 결과를 들은 그녀는 말했습니다. “운을 타고나든 쟁취하든, 중요한 건 관리 능력이죠. 아무리 운을 타고나도 그걸 다 말아먹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녀는 우리 넷에게 최종 결과를 정리해 운명 점수를 매겨주었습니다. 오만 원권을 주워 고점으로 시작했지만, 화의 기운이 조금 안 맞고, 대신 또 동전에서 점수가 높아지고. 대충 그런 식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점수 1등은 오만 원짜리를 주운 남자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가장 완벽한 운명의 그와 결혼하게 되었을까요? 아뇨. 어이없게도, 그녀는 최종적으로 가장 잘생긴 남자를 택했습니다. “어차피 얼굴 보고 뽑을 거면서 왜 그렇게 이상한 일들을 시킨 거야?” 저는 얼마 전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얼굴은 무슨, 그랬으면 당신 뽑았겠어? 넷 중 유일하게 당신만 매일 인사하고 안부를 물어봐 줬잖아. 마지막 순간 자꾸 당신이 보이더라고.” 하여간, 정말 이상한 여자입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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