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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대한민국’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생겨난 국호일까

1920년 4월 10일 신석우 “옛 나라 이름을 잇는 백성의 나라”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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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당시 태극기로 만든 탱크톱을 입고 ‘대~한민국 ’을 외치는 젊은이 들.

 

우리가 일상에서 대단히 자주 쓰는 고유명사 중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말처럼 그 빈도에 비해 유래가 잘 알려지지 않은 말도 드물 것입니다. 때로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은 가슴 벅차거나 감격적인 순간이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경우가 많은데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국호(國號)인데,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유래된 것일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기억도 없는 듯합니다.

 

이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선 104년 전인 1919년 4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3·1 운동 한 달 뒤에 중국 상하이에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중대한 일을 벌입니다. 곧바로 독립 만세 운동의 후속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임시정부 수립’이었죠. 독립 만세 운동을 했으니 새로 독립할 나라의 정부를 세워야 했던 겁니다. 모임의 이름은 ‘임시의정원’으로 정했으나 그들은 시급하게 결정해야 할 일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나라 이름이 없다……!

국호부터 정해야 무슨무슨 나라의 임시정부라는 정부 이름을 지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당시 회의록인 ‘임시의정원 기사록’을 보면, 독립운동가 29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국호를 정하는 토의에 들어간 뒤 ‘먼저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부르자는 신석우의 동의와 이영근의 제청이 가결됐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나라 이름 ‘대한민국’을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우창 신석우(1894~1953)가 처음 제의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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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신석우.

 

좀 생소한 인물이라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신석우는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약하다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임정 교통총장을 지냈고, 1924년 귀국해 조선일보를 인수하고 부사장과 사장을 맡으며 민족언론 운동과 신간회 운동에 헌신했습니다. 1931년에는 일제의 압박을 피해 조선일보 사장직을 독립운동가인 민세 안재홍에게 물려주고 상하이로 망명했고, 광복 후에는 초대 중화민국(대만) 대사를 지냈습니다. 1995년 독립훈장 건국장이 추서됐습니다.

 

신석우는 왜 ‘대한민국’이란 생소한 이름을 제안했던 것일까요. 그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이 ‘대한’이란 이름으로 망했으니 새로 독립할 나라 역시 ‘대한’이란 이름으로 일어서야 한다.”

 

당장 회의석상에서 반박이 나왔습니다. “대한이 뭡니까. 이미 망해버린 나라의 국호잖아요? 그걸 그대로 부른다는 건 감정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어요.”

 

“아니, 일본에 빼앗긴 이름이니 일본으로부터 다시 찾아오자는 건데 무엇이 문제라는 말입니까?”

 

“그보다는 ‘조선공화국’이 더 낫지 않을까요?”

 

“‘고려공화국’은 어떨까요?”

 

그런데 사실 국호의 핵심 의미는 ‘민국(民國)’에 있었습니다. 대한제국이 망한 지 단 9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독립 후 새로 건설할 정부는 군주제가 아니라 백성의 나라인 민국, 즉 공화제로 한다’는 데 기본적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다시 군주국으로 복벽해야 한다는 의견은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기 전의 본래 우리나라 이름인 ‘대한’에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뜻하는 ‘민국’이 결합됐던 것이죠.

 

결국 그다음 날인 4월 11일, ‘대한민국’은 ‘고려공화국’ ‘조선공화국’ 같은 이름을 제치고 새 독립국의 국호로 제정됩니다. 이와 함께 임시헌장이 제정되고 내각이 구성된 이날을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라 부릅니다. 대한민국 국호는 광복 후인 1948년 6월 7일 헌법기초위원회의 심의에서 그대로 계승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 줄여서 ‘한국’이 돼 온 것인데, 그렇다면 ‘대한’이란 이름은 언제 누가 지었던 것일까요?

 

‘대한’이란 국호는 1897년에 출범한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시작됐습니다. 한(韓)이란 고대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나라의 이름, 즉 마한·진한·변한을 통틀어 불렀던 ‘삼한(三韓)’에서 유래한 것이었고, 나중엔 의미가 좀 달라져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三國)을 ‘삼한’이라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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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덕수궁)에서 촬영된 고종과 둘째아들 영친왕 이은. 1907년 황제위에서

강제로 퇴위된 뒤 영친왕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으로 추정된다.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 국호를 제안한 사람은 황제로 즉위한 고종이었습니다. 고려가 삼한의 옛 땅을 통합한 것을 바탕으로 삼은 조선 왕조가 그 뒤 영토를 더 넓혔으니 ‘대한’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나라가 중국과 대등한 ‘제국’으로 격상하는 마당에, 중국이 이름을 내리는 형식을 통해 지어졌던 ‘조선’이란 이름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민국’이란 이름은 이보다 8년 전인 1912년에 세워진 ‘중화민국(中華民國)’을 본뜬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1897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수립된 지 18년 뒤인 1915년 중국의 원세개(袁世凱·위안스카이)는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는데 나라 이름이 ‘중화제국(中華帝國)’이었다는 사실을 따질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3개월 만에 원세개가 퇴위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말입니다. 누가 원조고 누가 본떴는지 따지기보다는, ‘민국’이란 개념 자체가 이제까지 없었던 ‘백성의 나라’라는 점이 더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네, 백성의 나라, 국민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