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거처, 창덕궁
2023.07.24 10:59
왕의 거처, 창덕궁
태조는 조선 건국 3년차인 1394년(태조 3년)에 한양으로 천도해 정궁(법궁)으로 경복궁을 지었지만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즉위한 정종은 1399년(정종 1년)에 옛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겼다. 그러나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를 결정했다. 재천도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태종은 향교동에 이궁(移宮) 건설을 명해 1404년(태종 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405년(태종 5년)에 완공했다. 그 궁이 바로 창덕궁이다. 그러나 한양에 이미 경복궁이 있는데 굳이 새 이궁을 짓는 것은 태종이 경복궁에서 머물기 싫다는 의미였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이러한 양궐 체제(兩闕體制)의 두 궁 사이를 오가며 번갈아가며 거주한 경우가 많았다.
태종은 창덕궁을 완공하기 직전에 개경을 떠나 한양에 도착하는 그 길로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으로 이어했다. 1405년(태종 5년) 한양으로 돌아온 이래 태종은 1418년(태종 18년)에 아들 세종에게 양위할 때까지 주로 창덕궁에서 거처했다. 태종은 자신이 피바람을 불러일으킨 곳이라 그런지 경복궁을 기피했다. 다만, 커다란 국가 중요행사들은 주로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경회루 등에서 열었다. 출처 / 위키백과 |
태영이 장마를 피해서 고궁을 찾았네.
언제 찾아도 창덕궁의 위용이 계절속에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