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과 명성황후의 마지막 처소인 乾淸宮
2010.01.20 10:34
▼ 경회루 부터. 사진 오른쪽 담 사잇 길로 주욱 들어갑니다.
▼ 이런 문을 몇번 지나서 청와대 앞길이 되는, 거의 현재 경복궁의 뒷 담까지.
▼ 향원정. 몇년전에는 향원정을 찍으려면 뒤의 뭔 경비사인지 하는 건물까지 잡혀서 안찍었었는데...
▼ 집옥재를 한장으로 편집, 향원정 뒷편, 왼쪽에 집옥재, 오른쪽에 건청궁.
▼ 건청궁 안에,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
▼ 오른쪽의 명성황후 처소에서 저 복도를 지나 고종 처소로 가시다가 당하신듯.
▼ 명성황후의 처소인 곤녕합(坤寧閤)은 이 뒷건물(와서 보니 아차 안찍었네요.) 뒷건물에 윗사진의 복도가 연결.
▼ 건청궁 오른쪽의 얕으막한 언덕이라기보다 흙 더미. 이곳이 녹산(鹿山)인듯.(아래 기사 참조)
“저기가 피살 현장”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지난해 12월 29일 경복궁 내 장안당 뒷마당에서 명성황후가 살해되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괴한들은 대원군의 입궁을 소리쳐 왕과 궁인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고, 그 틈에 일부는 곤녕합으로 침입했다. 왕은 장안당의 마루로 오르려는 자들을 직접 가로막았지만 괴한들은 왕의 어깨마저 함부로 밀쳤다. 이때 곤녕합에서는 한 여인이 궁녀들과 함께 장안당과 연결된 복도로 들어섰다. 좁은 복도를 다 지나 왕이 있는 장안당 마루 입새에 이르렀을 때, 뒤를 쫓던 괴한 중 하나가 그의 덜미를 잡았다. 그러곤 뒤뜰로 끌어내린 뒤 칼로 내리쳤다. 쓰러진 사람은 왕비였다. 칼을 휘두른 장본인은 일본 육군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宮本竹太郞)였다는 사실이 최근 새로 밝혀졌다. 일왕의 명령을 따르는 일본 군부가 을미사변을 일으킨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건청궁에는 그 비극을 감싸 위로하려는 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괴한들의 침입도(사건 당시 우치다 사다쓰치·內田定槌 일본 영사가 작성)와 비교하며 둘러본 장안당의 뒤뜰과 곤녕합의 복도는 ‘100여 년 전의 역사를 제대로 직시하라’고 요구했다.
○ 대본영의 지시로 왕비 시해
괴한들은 왕비의 시신을 곤녕합의 옥호루(玉壺樓)로 옮겨 사진과 얼굴 대조를 마친 뒤 시신을 곤녕합 옆의 녹산(鹿山)으로 옮겨 나무더미를 쌓고 태웠다. 타고 남은 시신을 건청궁 앞에 있는 연못 향원정에 던졌지만 곧 수면으로 떠올라 다시 거두어 녹산 기슭에 묻었다.
최근 재일동포 여류사학자 김문자 씨는 일본 군부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연구서 ‘조선 왕비 살해와 일본인’에서 일본군 최고사령탑인 대본영(大本營)이 왕비 살해를 지시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현장을 지휘한 것은 8명의 육군 장교였다. 지금껏 ‘낭인’들의 소행으로 알려진 것은 ‘연막’이었다.
○ 조선 침탈의 시작, 운요호 사건
일제의 조선 침략은 을미사변 20년 전인 1875년 운요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8년 일왕 옹립 후 유신세력이 가장 먼저 창설했던 해군은 1874년 대만 사건에 이어 1875년 9월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 침략 야욕을 드러냈다.
2002년, 그간 일본 방위청 자료관에 깊이 묻혀 있던 운요호 함장의 제1차 보고서가 서울과 일본 도쿄에서 논문을 통해 동시에 공개됐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운요호 사건의 내용이 거짓이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배는 일본의 주장과는 달리 처음부터 국기를 달고 있지 않았다. 조선 포대의 발포는 정당한 것이었다. 일본 외무성은 도쿄 주재 서양 외교관들의 사건 설명 요구에 대비해 나가사키에 있던 함장을 불러올려 보고서를 고쳐 쓰게 했다. 중국 랴오둥(遼東)으로 가던 중 식수가 떨어져 국기를 달고 접근하였다는 거짓 내용은 이때 들어갔다.
역사의 진실이 감추어진 근대 한일관계사는 여전히 많다. 가해자가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화해의 의미도 그만큼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 청일전쟁 직전에도 궁중 침입
일본은 청국과의 일전을 위해 1889년 징병제를 개정해 병력 규모를 3만 명에서 36만 명으로 대폭 늘렸다.
1894년 초여름 동학농민군 봉기 진압 명분으로 양국의 동시 출병이 이루어졌다. 이때 일본군 1개 혼성여단(8000명)은 동학군의 활동 근거지인 전북 전주 쪽이 아니라 서울로 향했다. 농민군 봉기에 대한 근본 대책으로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일본 측은 회유를 거듭하다가 7월 23일 0시 30분을 기해 여단 병력이 도성을 둘러싼 가운데 1개 대대 병력을 경복궁 안으로 투입해 왕을 포로로 삼다시피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대륙 침략을 위한 준비
일본군은 1894년 6월 5일 동시 출병 때 이미 청국과의 전쟁을 각오하고 대본영을 설치했다.
1895년 4월,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일본군은 철수를 꺼렸다. 일본 군부는 전신선 관리를 위해 1개 대대 규모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키기를 바랐다. 조선 국왕과 왕비는 이를 거부하고 전면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대본영은 육군 중장 출신의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를 조선 공사로 임명하고 그에게 왕비 살해의 밀명을 내렸던 것이다.
을미사변을 전후로 한 일련의 사건은 일본 군부가 주도했음이 명확하다. 국력의 쇠약은 우리 왕과 왕비의 안방까지 군홧발에 짓밟히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이어졌다. 사건이 있은 지 한 세기가 넘었지만 건청궁의 뒤뜰과 복도, 녹산의 기슭은 비운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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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철
2010.01.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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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란
2010.01.20 10:34
회장님 컴터가 궁금합니다. 나중에 뵙게되면 듣지요.
'100년후 이든 1000년후 이든 일본을 합병해야..' ㅎㅎ 회장님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
성기호
2010.01.20 10:34
제 컴퓨터에 하자가 있어 한동안 모든 작업을 할수 없네요.
역사적 사실을 곁들여 잘 올리셨습니다.
최근에 알려지는 사실은 명성황후 시해의 군부주도,
고종의 사후 피부색 변화로 알려지는 독살의 법의학적 판단.
물론 국제정세에 어둡고 무능한 왕실,죽기살기로 싸우는 지도자들(요새 우리 정치권과 비슷)이
일본의 야욕을 부채질한 면도 있으나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타국 왕과 왕비를 제거하는 일본.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합방한 일본. 멍청이 합방당한 조선. 이 사실을 대대손손 가억해야 합니다.
창피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냉정하고 차분하게 국력을 키워 언젠가는(100년후 이든 1000년후 이든)
일본을 합병해야 합니다. -
이정란
2010.01.20 10:34
맞아요. 기억나네요. 하얀, 네모난 건물이었는데... 건청궁 바로 뒤인것 같아요.
성회장님,
이 날 혼자 사진을 찍고있는 성회장님을 뵈었는데 사진 올라오길 기다리다가 제것을 먼저 올렸습니다.
작품으로 찍으신것 올려주시길 기다립니다. -
김영길
2010.01.20 10:34
사진에 대해서는
아직 둔감 합니다.
그런데 그 창 판소리가
너무나 눈물나게
들리네요.
우리는 양복 저고리를
입고는 있지만 우리속에는
무언가 뭉클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이정란
2010.01.20 10:34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한오백년'인데 글을 올리고나서 정해철씨 글을 읽으니 슬그머니 겁이나서 다른 곡으로 바꾸었습니다.
놀웨이의 수사네 룬뎅의 '내 곁에 소중한 사람'으로.
맞습니다. 그날도 그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뭉클했어요. 경복궁을 복원한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좋았던지요.
이젠 광화문에서 북악쪽을 보는 탁 트인 경관이 참 좋습니다. -
하기용
2010.01.20 10:34
* 눈 덮힌 경회루가 손님도 없는 가운데 잠자듯 조용합니다.
옛날에 國展등 갖가지 미술전을 개최하던 국립미술관이 사라지고
청와대 쪽으로 새로운 건물이 복원 되어 이제는 경복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
이정란
2010.01.20 10:34
청와대 앞길이 개방... 이라면서 궁금했는데 언제였는지 우리 경무대 단체로 간적있지요?
그 이후엔 그쪽에 가본적이 없네요. 중학교때가 아니었나요? 초등학교때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경복궁은 여전히 건축중이고요. -
김영은
2010.01.20 10:34
역사 바로 알기는 우리 후손들의 몫이지.
이태진 교수에 이어 네가 을미사변에 관한 길나잡이를 해 줬구나.
겅복궁을 복원하면서 피로 물 들었던 역사적 현장을 꼼꼼히 고증해
둔 것은 우리 후대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지!!! -
이정란
2010.01.20 10:34
경복궁 복원하면서 고증 자료가 있었던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어.
담당하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그들에게 고맙단 생각도 들었고. -
권오경
2010.01.20 10:34
피 흘린 역사의 현장은 지나고
지금은 고즈넉히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말해 주는구나.
얼마나 알아듣고 못 알아듣건간에 가슴 뭉클. 아려오는구나. 우린 한 민족.
우리 분연히 일어나 걸어갑니다. -
이정란
2010.01.20 10:34
우리 8일에 경복궁 전체 출사였는데... 말이 난 김에 후배들도... 나도 이렇게 옆에서 가자해서 카메라 들고 나갔지.
우리끼리 산책으로 함 가도 좋을듯해. 집들이 넘 많이 들어서서 자세히 보기도 시간이... -
김숙자
2010.01.20 10:34
스포츠를 해도 일본에게 패하면 공연히 화가 나는 것은
우리 가슴에 응어리로 깊게 깔려있는 일본에 대한 증오감 때문일 거야
저 그림과 글을 보니 공연히 울컥하네. -
이정란
2010.01.20 10:34
숙자야,
너 본지 오래다. 여전히 바쁜가보다. 언제든 인사회에서 함 보자. -
이문구
2010.01.20 10:34
이 게시물을 보면서
서울 시내 여기저기만 찬찬히 둘러봐도
볼 만하고 촬영할 만한 고궁이나 아름다운 자연 등이
무수히 많은데 괜스레 먼 곳으로만 눈을 돌리려 하고
그것도 전국 유명한 명소만 찾아 헤매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
이정란
2010.01.20 10:34
맞습니다.
새로 오신 선사회 선생님은 먼곳에 출사를 뒤로하고(생각 안하시고) 근처에서 근접해서 찍는것을 권합니다.
하긴 찍을것은 내 집안에서도 많지요. 작가가 아니니까 보이지 않는것일뿐. ㅎㅎㅎ -
김동연
2010.01.20 10:34
작년 12월 27일에 영자랑 가서 새로 복원된 건청궁을
찬찬히 둘러 보았지만 그곳에서 민비가 변을 당했다는 사실을 몰랐어.
새삼스럽게 서늘한 기분이 드는구나. 아주 잘 복원해서
후세에 이렇게 기막힌 역사를 알리게 되어서 다행스럽다. -
이정란
2010.01.20 10:34
간지 얼마 안되었구나.
나도 무심하게 몰랐어. 현장에 가서 보니까 뭉클하더라.
남의 나라 왕비를...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이야. 절대로 용서가 안되지... -
이민자
2010.01.20 10:34
정란아 . 자세히 알려주어 고맙다 .
건청궁 처음 들어보는 궁 이름이네
그저경복궁 하고 경회루 아렇게만 알았는데
경복궁이 새로 복원 되면서 한번도 가지 못했는데
시간이 되면 그 역사의 현장을 꼭한번 견학해야겠구나..
정란아 사랑해 고마워. -
이정란
2010.01.20 10:34
민자야,
너 오늘 보겠다. 너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거 있지...
우린 어딜 가나 주민증만 보여주면 통과야. 가까운 곳에 있고.
그런데도 실버들은 별로 없더라. 하긴 영화도 반값인데 실버들은 별로 안가지. -
김영종
2010.01.20 10:34
흉물스럽든 향원정 뒤가 깨끗하여 졋군요
시간내서 천천히 역사를 머리에 그리며 다녀 보아야 겟 습니다
그럼 이젠 완전히 복원 되었나요
이제부턴 우리 역사의 외곡된 부분도 고쳐저야 할텐데
우리가 배은 우리 역사도 많이 왜곡 되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이정란
2010.01.20 10:34
향원정, 그때 같이 다닐때였지요? 춘파샘이랑.
지금도 복원 계속중이데요. 건청궁에서도 작업중이었어요.
역사 왜곡이 많겠지요. 당시에 득세했던 층들이 해방후에도 그대로 힘을 갖고 있었으니... -
박성순
2010.01.20 10:34
마음의 여유를
잘 보고
의미 있게 읽고 갑니다
수고...감사.... -
이정란
2010.01.20 10:34
저도 잘 몰랐던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시간을 가지시고 카메라 들고 다니시리라 기대합니다. -
민완기
2010.01.20 10:34
역사를 옳바르게 일깨워주신 이정란 여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그실 오늘이 있기까지는 우리동문 이민섭(당시 문공부장관)동문의
중앙청철거결정이 큰 작용을 했다고 봅니다. 두분께 감사 드립니다. -
이정란
2010.01.20 10:34
'역사를 일깨워...' 아닙니다. 저는 새로 지은곳을 '구경' 다닌것 뿐이지요.
이민섭 장관이? 아 그때 였군요. 큰 일을 하셨군요.
당시엔 저런 '튼튼한' 건물도 철거?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이젠 그 건물이 생각도 안 날 지경입니다.
경복궁을 보면 그렇게 가슴이 탁 트이고 후련할 수가 없어요.
우리의 것, 역사는... 정말로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하는 생각이... 저같은 보통사람도 하게되네요. -
김승자
2010.01.20 10:34
어찌 그토록 무방비로 그런 참변을 당했을고?
민족의 수치요 비운의 발자취를 새롭게 경각시켜주는구나.
흰눈으로 덮힌 경복궁내가 더 슬프게 보인다. -
이정란
2010.01.20 10:34
승자야,
졸업하고 50년만에 본 네가 어제까지 본것 같았어.
여기 자주 들어와서 흔적을 남기고 사진으로라도 얼굴을 보여줘서 그런가봐.
흔적을 남기면 내용이야 무엇이든 '아, 승자네가 잘 있다는 얘기'구나 알게되지. 몇줄만 남겨도 반갑고 고맙고... -
김인
2010.01.20 10:34
사진 촬영이 너무 멋있게 눈에 확 닥아옵니다.
편집도 일품이고, 사진 설명이 역사를 따라가게 인도합니다.
쪽문을 앞으로 하며 걷는 뒷모습이 부군이신 황 교수인가요?
사진 설명문 앞에 까만 삼각점! 전에 배웠는데 어디를 눌러야 되더라... 인사회에서 다시 한수 부탁할게요. -
이정란
2010.01.20 10:34
▼ 은 ㅁ+한자키. 한글 자음, 쌍자음까지 하나씩 누르고 한자키를 눌러보세요. 묻고 답하기에 지우지 않고 있을겁니다.
저는 언제나 '난 리포터야' 하면서 뒤따르며 눌러댑니다. 가끔은 가다 말고 '고만좀 찍어라' 하고 도망가지요. -
김재자
2010.01.20 10:34
섬세하게 -배우는 학생처럼 ,
새삼스리 쏙~들어오네.
그리고보니 난 허당이야 !
늘 언저리만 보고다니니^^^
잘 배우고 보고가
건강하게 잘 지내 정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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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것 같은데 그 건물은 없어진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