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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異見)을 구합니다.

2009.11.01 21:33

오세윤 조회 수:276










 



                                                                              아, 영등포!

                                           


                                                                    오 세 윤





  7년여 만에 가운을 다시 입었다. 계절 독감 예방접종 예진의사. 정년 뒤, 비정규직으로 영등포보건소에서 야간진료를 맡아 근무하는 김중식 동문의 요청으로 임시 출근하게 됐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 5일 근무. 출근 8시 30분, 통근거리 1시간 20분. 6시 40분에 집을 나서면 구청엔 8시쯤 도착한다.


 접수 행정요원 8명, 접종간호사 6명, 예진의사 2명이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하루에 한 동씩, 각동을 순례하는 접종. 오늘, 17일째인 마지막 날 나는 영등포 본동 주민센터 반 지하 주차장에 마련된 접종장소에 앉아 진료를 시작했다.


  전철과 열차역을 겸한 롯데백화점을 삼각형의 꼭짓점으로 주민센터는 오른쪽에 그리고 어제, 쉼터의 노숙자들과 쪽방주민들을 접종한 광야교회는 왼쪽에 있다. 교회 앞에 노숙자들을 진료하는 ‘성 요셉의원’이 있고 그 뒤로 대부분이 베니어 한 장 넓이인 쪽방들이 벌집처럼 들어선 건물들이 줄을 지어 섰다.


 10월7일 대림 3,2,1동을 시작으로 신길 7,6,5,4,3,1동, 양평, 문래, 도림, 당산, 여의도동을 거치면서, 거의 매일처럼 백화점을 비롯해 현대식 건물들이 우뚝우뚝 솟은 역 앞 거리를 지나면서 나는 매번 오랜 전날에 보았던 역전모습을 서먹하게 떠올리고는 했다. 





 1·4후퇴 1주일 전인 1950년 12월 29일, 이승만대통령의 수도소개명령에 따라 피란길에 오른 우리가족은 장호원, 음성, 조치원등의 남쪽 낯선 곳들을 머물다가다를 반복하며 4월 하순, 충청남도 홍성이란 곳에 짐을 내렸다. 그곳에서도 자리를 못 잡고 두서너 집을 더 전전하다 가을에 들어서야 읍내 변두리 흥필이네 바깥채에 세를 들어 안주했다.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는 달리 그 집 아이들은 손버릇이 고약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빈손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무든 배추든, 수수 대가리든 고추든 고구마든, 무엇이 됐든 남의 것을 들고서야 들어왔다. 한 살 위인 안집 흥필이와 나는 곧장 친구가 됐다. 그를 따라 낚시를 다니며 나도 은연중 물이 들어 곧잘 남의 곡식에 손을 대는 버릇이 붙었다.


 


 


 해를 넘겨 이듬해 2월 하순, 흥필이가 나에게 은근하게 서울행을 제안했다. 수복은 되었어도 서울은 민간인의 출입이 불허되던 때, 때문에 장안은 빈집천지여서 훔칠 물건이 쌔고 쌨을 거라며 들어가기만 하면 떼돈 버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했다. 솔깃했다. 떼돈은 고사하고 털 달린 미군파커하고 내복만 있어도 겨울을 춥지 않게 지낼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빵도 가래떡도 얼마든지 사먹을 돈이 생긴다지 않는가. 군말 없이 동의하고 구두닦이 통을 하나씩 만들었다. 노잣돈을 마련하며 가기에는 구두닦이가 십상일 듯 싶어서였다.


 


 드디어 2월 28일 새벽, 서울을 향해 용감하게 출정했다. 어찌어찌 노량진역에 도착한 게 오후 서너 시경, 도강(渡江)은 열차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 시간쯤 기다려 정차하는 열차에 올라탄 것 까지는 좋았지만 곧바로 미군헌병에게 들켜 멱살잡이로 플랫폼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 한 번의 수모로 장안입성을 포기한 채 어둑해진 길을 따라 영등포까지 걸어왔다. 종일 굶은 배가 쓰리고 아팠다. 의기도 도심(盜心)도 배고픔에는 쉽게 꺾이는 건가. 깜깜해서도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숙소를 찾았다.


 역 바로 앞, 하늘이 뻥 뚫린 채 ㄷ자로 담벼락만 남은 벽돌건물에서 열차차장에게 뇌물로 쓰려던 양담배 한 갑을 주고 하룻밤을 잤다. 바닥엔 그래도 가마니가 깔려있어 밑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어설프게나마 막아줬다. 포대자루를 덮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거적때기를 들치고 나와 보게 된 3월 1일의 역 앞, 폭격으로 완전 폐허화된 황당한 모습은 진도 8의 지진보다도 훨씬 더 처참했다. 57년 뒤인 오늘, 지금의 영등포가 그 폐허위에 섰다.  


 


 


 다음해 봄, 홍성에 야간 고등공민학교가 생겼다. 지방법원의 김용환 판사(후에 장면정부 법무부차관을 지내셨다.)가 성결교회내 부속 유치원건물을 빌려 홍성중학교의 선생님들을 모셔다 아이들을 가르치게 했다. 건물은 물론 선생님들도 무상이고 무보수였다. 학비도 없었다. 대부분이 두서너 살씩 나이를 넘긴, 관공서의 소사, 여관, 빵집, 빵꾸집, 양복점이나 다방에서 심부름하는 아이들. 배우는 게 신이 났다. 일 년 뒤, 나는 운 좋게도 정식중학교에 편입돼 공부하게 됐다. 졸업하고 서울사대부고에 합격해 우회로나마 다시 서울에 들어올 수 있었다.


 야간에서도 주간에서도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열성으로 가르치셨다.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 지금보다 순수해서였는지 아니면 달리 열정을 쏟을 ‘꺼리’가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나의 오늘은 오로지 그분들의 수고였다. 47명의 졸업자 중에는 나중 예비역 대령, 의사, H읍장, 대 선박회사의 일급 기능공, 고교 서무과장, 지방 고급공무원으로 C시의 여성회관장을 지낸 이가 나오고 나머지 사람들도 현재, 모두 건실하게 살고 있다.


 


 


 문래동의 바람 불어치는 대로변에 햇볕가리개 천막을 치고 앉아 진료하던 때도, 여의도 앙카라공원에 앉아 예진하던 때도,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명제는 교육문제였다. 잘 사는 동네엔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반면, 못사는 동네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 현격히 적었다. 교육과 빈부에 따라서도 그들의 건강과 신체 연령이 달랐다. 하지만 단 하나,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근의 초등학교엘 가보면 잘사는 동네나 못사는 동네나 한결같게 운동장에 아이들이 적었다. 영등포인구 43만여, 그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9.5%인 3만8천여. 해마다 2,000명씩 늘어난다고 한다. 그에 반해 출산율 1.19. 함께 근무하는 간호사들이나 행정요원 대부분 아이가 하나라고 했다. 왜 더 안 낳느냐는 물음에 키우기가 힘들어서라고, 더욱이나 사교육비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라고 답한다.


 


 


 국가 백년지사는 과연 어떤 것일까. 4대 강이, 세종시가 시급할까. 아니면 교육과 출산이 보다 화급할까. 근무를 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바로 나는 후자라고 단언한다. 영향력이 지대한 이가 ‘약속’의 중요함을 내세워 고집스럽게 자기주장을 펼치지만 혹 개인적인, 정치적 이해를 염두에 둔 건 아닐까.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고 한다.


 


 한 정치인의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발설한 세종시, 정치하는 이들 저마다의 정치생명과 이해득실로 자의반타의반으로 밀고가고 있는 중대한 사안. 이번만은 정말 나라의 백년 앞날을 살펴 진실했으면 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 의 우(愚)를 범하는 안타까움은 없었으면 싶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 희망근로로 기왕의 극빈층을 돕는 당장의 복지행정에 병행하여 강북과 변두리에서부터 공교육을 강화하면 사교육비의 부담이 줄어 출산율도 늘어나고 부동산도 안정되고 빈곤의 대물림도 적어지는 삼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세종시 터에 서울대는 물론 몇몇 사립대에 무상으로 부지를 마련해주고 60년대의 연세대학처럼 학교성적 우수자를 상당수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시킨다면, 충청지역 출신의 중·고 졸업생에게 얼마간의 인센티브를 준다면 어떨까. 인구의 집중과 도의 발전에는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천도라면 모를까 행정기관의 이전은 과천의 예에서 보듯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리라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일. 물려받을 후손이 없으면서 세종시가, 운용할 바르게 큰 후손이 없으면서 4대강이 무슨 소용이랴. 선후를 헤아려 서두르지 않는 현명함이 있기를 바라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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