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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문화의 후원자 (김대환 글을 읽고)




한국일보에 실린 김대환의 칼럼을 읽어보고 그 글이 출판되기 전에 엄마인 내가 보았더라면 중요한 한 가지를 빠트렸다고 충고 해주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우리의 동창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 김대환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중요한 것에 대해 쓰고자 한다.





김대환이 신문칼럼에 쓴 대로 경제적후원자가 문화발전에 대단한 몫을 차지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문화를 알아주고 수용할 수준의 관객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잘 후원하고 멋있게 기획되었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나 자신도 바이올리니스트인 딸을 두고 가장 걱정해왔던 것은 지금과 같이 젊은 층에서 클래씩 음악을 감상하는 관객 수가 적으니 음악을 직업으로 갖는 젊은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세계적 수준의 연주가이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그 음악을 들어줄 관객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 졸업이후 고등학교 동창회는 물론 대학 동창회나 학부형모임 그리고 다른 사교모임에도 참석한 적이 없다보니 몇몇의 한정된 사람만을 알고 있는데다가 평생 거의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좁은 약국의 테두리에서 아침부터 한밤까지 시간을 보낸 나로서는 대가도 아닌 딸의 연주회에 클래식을 평소 즐겨 듣고 즐길 수 있는 관객을 확보하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나로서는 다행히 수준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덕분에 동창 중에 킅래씩애호가인 김영원 동창부부의 힘을 빌어서 수준 있는 관객을 초청할 수 있었으며, 또한 완숙하지 못한 연주이긴 하였겠지만 모두 자신들의 딸의 연주로 생각해서 모든 실수는 덮어주고 좋은 면만을 보아주는 동창들이 있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뿐이다. 더군다나 남자 동창들까지 적극 참여하여 성공적인 연주회가 될 수 있으면서, 김대환이 평소 생각하던 엄마는 너무 바쁘고 고전음악감상을 함께 하는 친구들도 거의 없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고 진정으로 음악감상과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많은 친구를 가진 수준 높은 큰 후원자로 엄마를 다시 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여식인 김대환도 딸이 음악도가 되는데 엄마로서 별 도움을 주지 못했던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엄마를 능력있는 후원자로 다시 보게 되었으니 엄마의 체면을 세워주고 클래씩 연주자에게 희망을 준 문화수준이 높은 우리 동창들에게 ‘당신들이 진정한 문화의 후원자이다’라고 크게 왜치고 싶다.





초청에 흔쾌히 수락해주고 장소가 어디든지 날씨가 어떻든지 가리지 않고 참석하여 부족한 연주를 즐겨주는 우리 동창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며 특히 클래식 음악애호가인 김영원의 적극적인 후원과 잊지 않고 열심히 홍보해주는 전준영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도 계속 한결같은 문화의 후원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줄인다.







김대환글:





삶과 문화/8월 1일] 문화의 후원자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ㆍ국민대 교수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그의 아내 카를라 부르니를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메디치에 빗대어 카를라 메디치라 불렀다. 아마도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퍼스트 레이디라는 점에서, 또한 세련미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메디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식기와 요리사, 가정교사, 심지어 조향사까지 데리고 와서 요리 예술 향수 등 프랑스 문화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그녀의 요리사는 당시 손으로 음식을 먹던 프랑스의 음식 문화를 현재 최고의 요리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만든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조향사는 파리에 최초의 향수가게를 열었다. 그녀의 결혼식을 위해 고안된 하이힐은 파리의 여인들에게 대유행을 일으켰으며, 프랑스인들은 그녀의 발레 가정교사를 통해 처음 발레를 접하게 되었다. 후에 루이 14세, 태양왕은 발레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 오늘날 모든 발레 용어를 프랑스어로 하게끔 만들었으니 카트린 메디치는 결혼선물로 문화를 갖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귀족 출신도 아닌 그녀가 최고급 문화의 전수자가 된 것은 바로 그녀가 르네상스 시대를 꽃 피우게 한 메디치 가문의 딸이기 때문이다. 상업으로 성공한 메디치 가문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를 장악함으로써 상인이라는 다소 미천했던 신분에도 불구하고 교황을 비롯한 종교인 예술가 정치인까지 배출하며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탁월한 안목으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대규모 후원을 하여 거대 유산을 후대에 남겨준 메디치 일가는 오늘날의 대기업 문화 마케팅의 원조라 할 수 있다.음악계에서는 4대에 걸쳐 하이든을 후원한 에스테르하지 후작 집안을 최대 후원자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후작의 열성에 매주 새로운 곡을 작곡해야 하는 하이든은 졸면서 작곡을 하기도 했고, 휴가를 받고 싶어서 힘들어 하는 단원들을 위해 재치 있게 '고별 교향곡'을 작곡하는 간접적 방법으로 후작에게서 휴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든을 믿는 후작의 적극적 후원 아래 그는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악단을 갖고 있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하이든. 그를 '교향곡의 아버지'로 만든 일등 공신은 바로 30년간 그와 함께 한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다. 사실 하이든을 후원한 덕에 에스테르하지도 이름을 음악 역사에 영원히 남겼으니 이 또한 서로 '윈-윈' 한 경우라 할 수 있다.부유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 탓에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후원이 거의 없던 시절, 우리나라에도 에스테르하지와 같은 후원자가 있었다. 바로 고(故) 박성용 회장이다. 일찍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금호사중주단을 만들고 유명 음악인들에게 연주 여행을 위한 비행기 표를 제공하는 등 다방면에서 음악인들을 지원해주었다.특히 영재 발굴에 앞장서서 고가의 현악기를 살 수 없는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는 값 비싼 명기를 대여해 주었다. 지금도 자비를 들이지 않고 독주회를 열 기회를 제공하는 영재 오디션은 음악도에게는 꼭 이루어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많은 음악인이 진심으로 애도하고 아쉬워한 것은 당연하다.예술에 대한 안목과 사랑, 아낌없는 후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삶은 정말 멋지다. 그렇다고 너무 기죽을 필요도 없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찬, 직접 표를 사서 공연을 관람하는 당신도 그들만큼 멋진 문화의 후원자이니까.





국일보 >뉴스 >사설 ? 칼럼


[삶과 문화/7월 11일] 할말은 반드시 하라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ㆍ 국민대 예술대 교수


고인이 된 알반베르크 현악 사중주단의 비올리스트 토마스 카쿠스카는 더 많은 음악인들이현악 사중주를 연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당위성으로 연주를 잘하든 못하든 인간으로서, 사회적 존재로서 현악 사중주의 연습과 연주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음악과 음색, 기량과 성격까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연주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개인이 돋보이는 독주를 우선시 하는 우리 교육 여건에서 여럿이 어울려 하모니를 완성하는 실내악은 뒷전일 수 밖에 없다.대학교 때 단짝 친구들과 그저 즐겁게 대충 악보를 익히는 수준으로 실내악을 접했던 나는 미국 유학 시절 고생스럽게 현악 사중주 활동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에서 임의로 팀을 구성하여 주었는데, 그 중 첼로 파트를 맡은 미국 여학생이 리허설 때마다 한 마디도 넘어가는 법이 없이 다른 파트에 잔소리를 해댔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와 다른 동양인 학생은 차마 반박은 하지 못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오케이' 라고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학기 내내 '너나 잘하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연주에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었지만 왜 그리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던지...몇 번을 꾹꾹 참다가 불만을 표출할 때면 그 동안 쌓였던 서운함 때문인지 실제보다 감정이 격앙되어 분위기가 어색해지곤 했다. 그렇게 속상하고 서먹한 한 학기를 보내면서 구성원들끼리 좀 더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하여 잘 알게 되고 나니 비로서 그녀의 잔소리는 잘하고자 하는 의욕과 정열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바르톡을 공부하던 마지막 학기에는 서로에게 조언을 더 해 달라며 의욕을 불살랐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의 충고에 대해 첫 학기 때 왜 그리 옹졸했었나 창피하기도 하지만 겸손의 미덕만 강조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란 때문이려니 내 자신을 변명하고 싶다.지금 대학에서 실내악을 강의하면서 첫 시간에 늘 강조하는 것은 서로의 충고에 기분 나빠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단점을 지적하는 충고를 들을 때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자신의 앞 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는 사실을 귀띔해 준 것처럼 고마운 일로 여기라고 말이다.그러나 말이 쉽지, 외국 사람들이라고 단점을 지적하는 충고에 익숙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실제로 유명한 현악 사중주단 가운데는 리허설을 하다 싸우고는 비행기를 따로 타고 가서 연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그런 점에서 고령으로 인한 단 한 번의 멤버교체를 제외하고는 같은 멤버로 45년을 활동하다가 금년 가을 은퇴하는 과르네리 사중주단은 정말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은 리더가 아니라 한 구성원일 뿐이라고 하는 제 1 바이올린 주자 스타인하르트의 역할도 중요했겠지만 모든 팀원의 이해와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그들은 자신들의 롱런 비결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우리의 사회생활에서도 꼭 필요한 지침 같다. '유머 감각을 유지하라' '동료에게 배운다는 자세를 가져라' 등의 여러 가지 수긍이 가는 지침들이다. 특히 나의 경험상 가장 와 닿았던 것은 '기분 나쁘지 않게 비판하는 것을 연구하라'와, 표현하지 않고 쌓아둘 경우 불필요하게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할말은 반드시 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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